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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Feb 02. 2016

이야기를 배회하는 주인공

폴라 호킨스 <걸 온 더 트레인>

중앙선을 타고 한남에서 옥수를 건너다보면, 매번 같은 시간대에 보게 되는 같은 광경에 비슷한 놀라움과 맞닥뜨린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만나면, 마치 원래부터 아는 사람인 것 처럼 친근하게 느껴져 반갑게 아는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맥락과 비슷한 이치이다. 가장 큰 공통점은 우리가 그 익숙한 광경과 사람들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소설 <걸 온 더 트레인>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레이첼은 자신이 지하철 속에서 매일 보게 되는 바깥 광경에 대해 자신이 전부 알고 있다는 착각에 그 사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설정과 주인공이었다. 우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 기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의 초반 폴라 호킨스는 기차가 항상 덜컹거리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표현한다. 흔들리는 기차의 승객으로서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관찰이 매일 일어날 지언정 말이다. 그러나 레이첼은 풍경 밖 행복해보이는 한 집을 출근 길마다 쳐다보면서 온갖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자신의 현재 상황과는 반대로, 건물의 부부는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을거라는 상상.



그러나, 그녀의 관찰이 부정확한 또 한가지 이유는 바로 주인공 레이첼이 알콜중독자라는 사실이다. 레이첼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서도 술을 빠트리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현재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친구의 집에 한껏 토해놓고도 치우지 않고 잠을 자는 민폐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녀의 알콜중독은 그녀의 평소 생활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뿐 아니라, 자신이 매일 구경하던 그 집의 부인이 사라진 날에 자신이 그 동네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하지 못함으로서 사건을 더욱 곤경에 빠트린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은 세 명의 여성이다. 주인공 레이첼과, 사라진 메건, 그리고 메건의 집 근처에 사는 안나이다. 안나는 레이첼의 전남친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있는 여성이다. 결국 레이첼이 부러워하던 메건의 삶의 방식은 안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레이첼은 무의식 속에서 안나의 삶을 동경하지만, 이를 부정하고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메건에게 그 삶을 대입시킨다. 레이첼은 안나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녀는 전남친 톰을 찾아가거나, 전화하거나 심지어 그의 집을 찾아가 톰과 안나의 아이에게 위협을 주는 것으로 안나가 가진 행복에 흠집을 내고 있다. 그러나 레이첼은 술 덕분에 그런 사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세 명의 여자는 각각 자신의 아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레이첼은 아이를 원하지만 갖지 못했다. 메간은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 안나는 자신이 아이를 지키고 싶어한다. 그녀의 삶 역시 그들의 시각대로 흘러간다. 레이첼은 평생 삶에 부족함을 느끼고, 알콜중독에 빠진다. 메간은 목숨을 잃는다. 안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단을 내린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행동양식은 구체적인 대상(아이)에 대해서나,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해서나 비슷한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야기의 화자는 레이첼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술에 취해있고, 전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일을 벌이기는 잘하지만(메건의 집에 찾아간다든가, 안나의 집에 찾아가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밍숭맹숭한 모습으로 이야기에 머물러 있으며, 때로는 그 흐름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반면, 메건과 안나는 다르다. 메건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끊임없이 행복을 찾아나선다. 행복을 남자와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이루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삶에 태도가 적극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안나는 소설에서 많은 부분 화자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한번 결정한 일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것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될 지언정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에 반전을 주는 인물 역시 주된 화자 레이첼이 아닌, 안나가 된 것이다. 따라서 책을 덮고 나면,  레이첼의 삶이 아닌 안나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을 쟁취하겠구나 하면서 고개를 젓게 된다.



<걸 온더 트레인>이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는 중인가보다. 레이첼 역에 에밀리 블런트라니. 완전 찰떡같이 어울려서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로도 재미있었지만, 영화로도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장르가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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