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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Jul 16. 2017

계엄군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택시운전사>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 당신의 안부가 궁금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 영화를 보았나요? 아직이라면 당신만은 그 영화를 꼭 보아야 합니다. 당신 역사가 그 영화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1980년은 제게는 낯선 해입니다. 당시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국사 책에선 근현대사 이야기가 3,4페이지로 정리되곤 했으니까요. 그 시대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외면한 건 그 시대가 아니라 저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서 광주까지 외국 손님을 태운 택시기사 김만섭의 시각으로 흘러갑니다. 그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고 오직 딸과 본인의 생활비 마련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 번에 큰돈을 벌려다가 오히려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 이후의 스토리 역시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으로 흘러갑니다.


영화이기 때문에 각색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검색해보니, 진실은 영화보다 참혹하더군요. 그 사람들은 쿠데타에 항거했다는 이유만으로 군홧발에 짓밟히고, 옷이 벗겨진 채로 맞거나 질질 끌려다니고, 200여 명이 사망했고, 실종되거나 다친 사람은 그보다 많습니다.  


                                                               <사진출처 : 5.18 기념재단>


광주의 일과 무관하다는 서울의 택시기사 김만섭을 굳이 짚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던 광주 시민들 모두 계엄군 주둔의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불의에 저항했을 뿐입니다.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방송사와 신문사가 본인들의 안위를 위해서 광주 시민들의 행동을 일부 폭도들의 폭동이라며 그야말로 선동하고, 전화를 다 끊어버리고 통금시간을 9시로 앞당기는 현실에서 광주시민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앞장서서 불의에 항거하고, 다치거나 숨진 사람들을 거두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었습니다. 그 장면들을 보는데 얼마 전 추운 날들의 광화문에서의 촛불집회가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탓이 아닌 일들 때문에 추운 겨울 거리를 나와야 하는 서로가 마냥 안쓰러워, 서로를 응원하던 날들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직 계엄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광주를 빠져나와야만 했던 김만섭과 위르겐 힌츠페터의 택시 안에서의 허망한 모습입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둘은 택시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살아남은 것에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죄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눈빛도 그들의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우리는 또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역사 속에 누군가를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나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택시기사 김만섭이 ‘손님’을 두고 왔다는 말을 할 때의 감정과 마찬가지로, 저는 1980년 광주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광주시민을 역사 속에 두고 온 것 같습니다.


단지 영화의 관객일 뿐인 제가 이 정도인데, 당신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군홧발로 사람을 짓밟던, 죄 없는 사람들에게 총을 쏴 죽인

계엄군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습니까?

 

빨갱이 운운하며 지역감정에 열렬히 동조하고 있습니까?

전두환이 나쁜 놈이라며, 그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변명하지는 않나요?

혹시 한 번도 불의에 편에 선 적 없던 사람처럼 작년 겨울 열심히 촛불을 들지는 않았나요?

영화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그래서 당신은 이 영화를 꼭 보아야 합니다.

당신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가 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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