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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Feb 01. 2018

다양한 병, 다양한 삶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 책은 소설이며 장르는 SF입니다’ 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은 제목은 사실 실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어딘가에 살고있는 실제 인물이며, 이 책 전체가 논픽션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기는 물론이고, 자신의 한쪽 발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매일 아침 침대 밖으로 던지다가 부상을 입는 남자, 특정 시점 이후로 매일같이 기억을 잊어버리는 남자, 귀에서 자꾸 수십년 전 음악이 라디오 처럼 들리는 여자가 나온다.  


책을 읽으며 여러 소설과 영화가 떠오를만큼 이 책은 여러가지 이야기의 소재가 될만한 이야기들로 가득차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저자이자 신경학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는 환자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 이 책을 쓴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신병에 대해서 자극적으로 쓰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자신의 환자였던 사람들에게 대해 최대한 자극적인 이야기까지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리버는 자극적인 환자의 ‘상태’가 아닌 그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현재는 두 사람의 레이가 있다. 할돌(약물)을 사용하는 레이와 사용하지 않는 레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진지하고 차분한 시민으로 그리고 주말에는 ‘익살꾼 틱 레이’가 되어 경박하고 열광적이고 영감에 가득찬 인물로 변신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은 레이가 처음이다. -p192



혹은 자신이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에 결코 불편한 점이 없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지만, 반면에 고통이 없는 모습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 끝없는 망각, 이 가슴 아픈 자기 상실을 지미는 알았다고도 할 수 있고 몰랐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다리나 눈을 잃으면 다리가 없고 눈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달을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p78

책을 읽으며 특별한 경험을 갖게 된 그들의 삶에 빠져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그가 읽어주었던 6천여페이지의 책 내용을 오롯이 기억하며 슬퍼할 수 있는 삶, 몇년동안 귀에서 음악이 흘러나와 치료를 받았지 결국 그 옛노래는 그녀에게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경험을 선사했으며, 그 또한 그녀의 인생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삶. 이보다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이 단순히 신경이 손상되어 어떤 현상이 나올 수 있는지를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인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질병을 가지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나 또한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식의 타인의 부족함으로 내 삶에 만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상태에 맞추어 각자 사는 방식을 마련했는데, 나는 과연 나의 성격과 상태에 맞추어 내 삶을 살려고 한 의지가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주말에 쉬는 삶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질병에 있어서도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고 혹은 질병을 치료하지 못한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노력하는 것이 '정상'은 아닐까.  


나의 부족함에 대해 사회 시스템을 탓하며스스로가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본 적은 있는지, 그리고 삶에서 절절한 희로애락을 느끼고자 노력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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