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우연히(?) 낡은 잡화점에 들어온 도둑 3명이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해 답장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보낸 편지 속 고민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고 다채로운 것이어서, 도둑 3명이 어떤 식으로 답장해야 하는지 엇갈리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이 자신이 읽은 책 중 가장 힐링이 되는 책이라고 꼽는 사람이 많아서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스토리의 흐름에서 나오는 감동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에서 깊은 감동이 느껴졌다. 편지를 받은 사람이 답장을 할 때에 수많은 시간을 고민해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듯,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이 글을 쓸 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씹어 넘겼다.
고민상담은 사람들의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평범한 일상 대화와 고민을 나눈다는 것 모두 스토리텔링의 한종 류일 뿐이지만, 후자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더 진득하게 만들어준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 황지우, '뼈아픈 후회' 중에서
고민을 터놓는 것은,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에 언급되는 사막과 폐허를 구경시켜 주는 것이다. 자신의 폐허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용기로 타인을 부르고, 상대방은 그 부름에 따라 진정한 마음으로 대한다. 아마 그 시간만큼 인생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시간도 드물 것이다.
책 속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과 답장을 하는 사람 모두 절실하고 진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글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내 내면의 고민이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복 시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라고.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연이 끊기는 것은 무언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p269
편지를 쓰는 사람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소박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답장을 받고 나서 한 행동도 결론도, 현실에서 있을법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갔다. 아마 모든 주인공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끝냈다면, 독자들은 지금만큼 이 책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시간여행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나라는 존재란 매우 미약하여 한 명의 인생에 손끝만큼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 같아도, 실은 어떤 사람들의 운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시간을 뒤트는 방법을 통해 들려주었다. 그리고 독자는 깨닫는다. 우리가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도, 우리 소소한 개인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중요한 사람임을.
그날 이후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살아있어서 비로소 느끼는 아픔도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극복해왔습니다. -p207
나에게 힐링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으로 기억되곤 했다. 나의 불합격을 위로해주기 위해 친구가 사주었던 파스타 집의 어두운 조명과 공기는 지금도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선명하다. 그 시간은 그림을 유난히 못 그리는 내가 캔버스에 풍경화처럼 그릴 수 있을 만큼 소중하다. 내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읽는 시간 내내 소소한 기적을 바라볼 수 있었던 힐링북으로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