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 오퍼>
<시네마천국>의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리오 모리꼬네가 다시 만나 만들어낸 <베스트 오퍼>는 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명화 못지 않은 포스가 있다.
스릴러라는 이 작품의 분류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3일쯤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 후유증은 어떠한 공포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인생 내내 안고 갈 하나의 자국이 생기는 과정을 지켜본 목격자로서의 후폭풍이었다.
꼭 다시 보고 싶지만, 단기간 내에 복습할 마음을 먹기는 쉽지 않은 영화, <베스트 오퍼>는 내게 그런 영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올드만은 성공한 미술품 감정가이다. 고아로 자란 어린 시절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성공한 미술가로 이끄는 동아줄이 되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그가 미술품 경매를 위해 와주기를 바라고 있을 만큼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인정받는 것은 오로지 '감정가'로서지, 올드만이라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다.
그는 수십년의 세월동안 부모님의 사랑은 물론, 다른 어떤 누구와도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비밀의 방처럼 숨겨 놓은 방에 수십년에 걸쳐 여성의 초상화를 수집한다. 커다란 방 한가운데 소파에 앉아 벽에 가득한 여성의 그림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그림 속 여성들과 마주하고 있는 만족감과 동시에 그림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공존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기계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던 그의 삶에 클레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우왕좌왕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이상한 '고객'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타인과 소통하려 하지 않고 믿지 못하는 모습에 올드만은 자신 속에도 존재하는 타인에 대한 벽을 바라보며 점점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키워간다. 클레어도 올드먼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의지하려 하면서 둘은 매우 더디면서도 극적으로 가까워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혜도 '자연스럽게' 늘어갈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올드먼은 클레어 만큼이나 서투르다. 그 모습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승민과 서연의 스무살 시절의 첫사랑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람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올드먼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 전과 다른 황홀경을 보며 기뻐하다가 자신을 기다리던 결말과 마침내 마주하게 되면, 관객은 올드먼 이상의 상실감에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가짜(fake)도 저마다의 진짜(authentic)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위조화가라 할 지라도,
자신의 그림에 자신의 진짜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조그만 곳에 자신의 진실을 남긴다.
모든 것을 잃고나서, 올드만은 그녀가 얘기했던 프라하의 광장에서 '나잇앤데이' 카페를 찾아낸다. 마치 위조그림에 자신만의 표식을 남겨 두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올드먼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상실한다는 것은 그것을 가져본 적이 있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은 상실감을 느낄 경험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그것이 설령 100%의 사랑이 아니었다 해도, 올드먼은 '사랑'을 해보았기 때문에, 사랑을 잃을 수 있었다.
그들은 올드먼에게서 그림을 빼앗아갔지만, 대신 사랑의 경험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경험은 더이상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나잇앤데이' 카페에서 덩그란히 그녀를 기다리는 올드만을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올드만에게 시간을 되돌려 다시 그녀를 사랑할 것인지 제안한다면, 그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사랑과 상실을 선택할 것이리라. 그리고 폭풍같던 사랑과 실연의 한가운데 기꺼이 걸어갈 것이다.
우리들은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