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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r 21. 2018

소외된 것들의 신(scene)

영화 <쓰리 빌보드>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과 예고편에 등장하는 세 개의 광고판.

이것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광고판까지 만들어 경찰서장에게 도발하는 밀드레드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던

어머니들과는 다르다.


그는 딸 안젤라가 죽기 전

'나가서 강간이나 당하라'는 폭언을 했고,

딸은 그 날 강간을 당했을 뿐 아니라 살해당기까지 한다.


밀드레드는 딸의 죽음 이후에도 누구에게든 각박하다.

19살짜리 어린 여자와 놀아나는 남편,

딸의 죽음에 상처받은 아들,

심지어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에게까지.

착한 것 과는 거리가 먼

밀드레드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일생을 평생 착하게 살아온 주인공이

고초를 겪으면 그를 응원하게 된다.

우리는 선은 항상 승리해야 된다고 배웠으므로.


조금은 거칠고 고약한 사람이

겪는 고초에 나는 질끈 눈을 감는다.

이야기는 마치 미주리 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지므로.

밀드레드는 월러비 서장과 미 경찰서에,

딕슨은 밀드레드의 친구와 광고업자에게 분노한다.

그들의 분노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왜 화가 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할 때,

혹은 분노의 원인이 나일 수도 있음을

숨기고 싶을 때 화를 낸다.


밀드레드의 마지막 광고판에 쓰인

How come?이라는 분노에 찬 물음은

어쩌면 밀드레드 그 자신을 향한 것인지 모른다.

반면 월러비 서장은 밀드레드와 딕슨을 이해한다.

그는 자신을 향해 세 개의 빌보드에 광고를 한

밀드레드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죽기 전 유서를 남겨 자신의 방식으로 그를 위로한다.


또한 그는 인종차별을 하는 딕슨에게 숨겨진

선한 본성을 이해하고

편지를 통해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던 바로 그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편지는 밀드레드와 딕슨의 다른 원동력이 된다.


광고업자 레드 또한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딕슨에게

오렌지주스 한잔을 건네며 그를 이해하고 용서한다.

이는 밀드레드가 레스토랑에서 남편에게 와인을 건네며

그를 용서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입장을 떼어놓은 채

타인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것이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것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또한 자기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타인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울림이 있다.


그래서 밀드레드와 딕슨의 연대가

과연 성공했을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한 차를 타고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떠났다는 사실,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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