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CEO 특강에 온 한 회사 상무님은 입사 조건으로 '애티튜드'를 언급했다. 그리고 애티튜드는 합격 뿐 아니라 회사 생활 내내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셨다. 대학생인 나의 뇌속에서 한동안 그 단어가 울렸다. '애티튜드'는 도대체 뭘까. 나는 한없이 되뇌이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첫 회사의 면접에서, 나는 면접관인 회사 대표님 앞에서 그 회사의 전통인 마라톤을 참가하는게 나의 인생목표라고 했다. 또, 야근을 해보고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미친 문장을 치기어린 마음으로 진심으로 내뱉었다. 대표님은 웃었고, 나는 내정자와 함께 TO까지 추가되면서 회사에 합격했다. 대표님은 너무나 먼 존재였지만, 종종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애티튜드가 이런 걸까. 면접이라는 찰나에 내뱉은 순간의 진심이 그들이 말하는 애티튜드일까. 이런 깃털같이 가벼운 것으로 입사도 하고, 직장생활도 가능한 것임을 나는 끝내 부정했다.
애티튜드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그리고나서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이다. 그리고 애티튜드란 아랫사람 뿐 아니라 윗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단어다.
직장인들이 회사를 다닐 때에 목말라 하는 것은 비단 돈 뿐이 아니다. 업무 중간에 듣게 되는 말 한마디는 어떤 보너스보다 달기도, 어떤 벌보다 쓰기도 하다.
그 찰나의 한마디를 형식적인 위선이라고 욕하는 것은 대학생활까지다. 회사에 다녀보니 위선을 떠는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타인에게 베푸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황현산 선생님의 <밤은 선생이다>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내게 삶에 대한 '애티튜드'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타인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위선조차 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뱉는 황현산님의 쓴소리는 읽는 것 만으로도 따뜻했다. 페이지마다, 구절마다, 글자마다 독자에 대한 존중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 집으로 도착한 날. 황현산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책 한글자를 읽는데에도 한참이 걸려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앞으로는 누구에게서 이 따뜻함을 찾아야해나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글이 한 사람의 여러 순간을 따뜻하게 만들었다고. 나는 이제 선생님이 세상에 남기고 가신 책들을 유품처럼 가지고, 다시 이 차가운 세상을 머금고 살아보겠다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