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주제는 순수함이 아니라 잔인한 현실이다.

[책과 현실]에서 맛보는 통찰

by 윤드류

생택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읽으면 대부분 어린왕자가 보여주는 순수함에 매료된다. 장미에게 가진 순수한 감정과 그에게 돌아가려는 순수한 열정에 감동하고, 심지어 힐링까지 받는다. 그래서 ‘어린왕자’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도 한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저 순수함이 도움이 될까? 힐링을 받았다는 것은 그저 닿을 수 없는 환상을 살짝 느껴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힐링이 아니라 회피가 아닐까?


책을 두, 세 번 읽다 보면, 순수함뿐만 아니라 그 대가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 참고로 ‘어린왕자’의 주인공은 조종사다. 어린왕자는 조종사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 즉, 이야기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둘 다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조종사도 주인공으로 봐야 한다.




‘a matter of consequence’ (번역: 중요한 일 혹은 진짜 중요한 일)


조종사와 어린왕자가 항상 하는 이야기다. 어른들은 진짜 중요한 일을 모른다며 자주 사용한다.


문제는, 어린왕자가 이 말을 한 게 조종사가 사막 한가운데 추락해서 죽을 둥 살 둥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고, 심지어 엔진을 고치지 않으면 사막에서 죽을 게 확실한 상황에서 조종사에게 양이 장미를 먹는지, 장미의 가시가 어떤 소용이 있는지 등을 계속해서 물어보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이런 질문을 할 법하긴 하지만, 그 어떤 아이도, 그 어떤 어른도 자신의 목숨이 달린 순간에 저런 질문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위기감이 안 느껴져서 저런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럼 보통 혼나기 마련이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어린아이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해주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소설 ‘어린왕자’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순수함’ 자체만을 위해서 그런 목숨을 걸라는 것은 아니고 순수함을 지켜야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왕자는 장미가 있는 자신의 행성에 돌아가기 위해 뱀한테 물려야 하는 초강수를 뒀다. 뱀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는데도. 100 퍼센트 확실하지도 않은데, 단지 가능성이 있다고 목숨을 걸고 달려든다니, 어디 소년 만화에서나 볼법한 내용이 아닌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 목표를 달성하려면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릴 땐 로봇에 심취해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정확히는 공학자겠지만, 그때는 다 과학자인 줄 알았다)가 되는 게 목표였지만, ‘너무 어렵다.’, ‘그런 건 천재만 할 수 있다.’, ‘이미 늦었다.’, ‘이것도 못 하면서 무슨 과학자냐.’ 등등의 말을 듣고는 포기했다.


무언가 힘든 일에 도전할 때마다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서 세계 랭킹에 들어가는 명문대에 들어가고 싶다는 ‘바램’만 이야기해도, 친구들이 ‘그 성적으로 되겠냐.’, ‘이미 늦었다.’, ‘너가 거기 들어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등등...


순수함은 어쩌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부터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어릴 때는 정말 뭣도 모르니까 일단 도전해보고, 실패하더라도 고집스럽게 계속 도전하고는 한다. 주변 어른들은 그런 아이의 고집이 안쓰럽기도 하고, 솔직히 짜증도 좀 유발하고, 어차피 안 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말리거나, 혼내거나, 도전을 포기시킨다.


무조건 어른들이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정답은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렇게 도전한 아이가 역사적인 무언가를 성취해낼 수도 있고, 아니면 결국 실패해 사회에서 1인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조종사도 결국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림을 포기하고 공부해서 조종사가 되었고, 어른들이 말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순수함을 잃었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되돌릴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것을 걸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길에 올라설 수 있다.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으로의 길에 가능성이 열리는 것뿐이다. 도박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열망하고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노력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어린왕자는 행성을 넘나드는 능력이 있었지만, 지구에 도착해서 그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나온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다. 심지어 이해하기 어려워서 장미를 떠났지만,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얘기하고 지식을 얻는다. 결국 방법을 찾았지만, 그 방법에 확신이 있던 것도 아니고, 어린왕자가 죽었는지, 살아서 되돌아갔는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은 채로 소설은 끝난다. 독자가 믿는 대로 결론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결론은 다 정해져 있는데 단지 보이지 않는 것인지...


결국 ‘어린왕자’는 꿈도 없이 적당히 공부해서 적당히 좋은 직업에 적당히 결혼하고 적당히 애를 키우는 것이 꿈이 아니라면, 자신이 일생에 추구할 목표를 이루려면 순수함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이를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잔인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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