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돼지, 착한 OO은 죽은 OO뿐이다의 원조 동물농장.

[책과 현실]에서 맛보는 통찰

by 윤드류



동물농장은 흔히 아주 예전에 사회주의가 성행했던 시절에 용감하게 사회주의를 비판한 소설로 생각하지만, 읽다 보면 의외로 현대에도 찰떡처럼 적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 정도는 된다고 밝혀진 이 시점에서 말이다. 참고로, 동물농장이 우화라서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면 1980을 읽으면 된다. 같은 작가가 쓴 매운맛 버전이다.



막간 상식.


1. 먼저 개돼지란 말은 영화에서 유행했지만, 개와 돼지가 한데 묶여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동물농장이 앞선다. 동물농장에서는 개와 돼지가 권력자와 그를 비호하는 폭력으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2. 동물농장에서 착한 인간은 죽은 인간뿐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가 후에 커뮤니티 등으로 퍼져서 인간 대신 비호감 그룹을 모두 넣어 사용되었다.



동물농장을 읽고 나서 보통은 소련의 사회주의‘만’을 비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물농장을 읽고 현대사회를 바라보면 사실 사회주의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에서의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즉, 모든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농장의 복서를 생각해보자. 복서는 동물농장 세계관에서는 매우 무식하고 힘만 세다. 이를 현실의 세계관으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복서(Boxer: 복싱선수)라는 이름처럼, 현실에서도 힘세고 무식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 동물농장 세계관에서의 능력은 바로 육체적인 힘이다.

- 현실 세계관에서의 능력은, 특히 한국에서의 능력은 스펙이다.

- 동물농장 세계관에서의 무식은 알파벳을 모르는 것이다. 다만, 알파벳은 인간의 언어로, 동물들이 굳이 알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관에서의 무식은 자신과 연관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벌어 먹고살 영역을 제외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치적 상식이나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해봤을 때, 복서를 현실의 세계관으로 옮긴다면 스펙이 뛰어나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경험해본 바로는 SKY 급의 명문대생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를 목적으로 하는 일부의 학생들 제외)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제삼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감정이입도 하고, 공감도 하지만 결국 자기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복서를 위시한 노동 계층의 동물들이 돼지들에게 반항하지 않고 착취당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답답해한다. 그리고 자신은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진짜 다를 수도 있긴 하나, 대선 때마다 2030의 투표율이 최저인 것을 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투표율이 높은 세대는 깨어있는가를 보면 그것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자신이 ‘가짜뉴스를 구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복서는 풍차와 동물들의 낙원이라는 꿈을 향해 그야말로 경주마처럼 일로정진했다. 이를 탓할 수 있을까? 한 개인으로써 자신이 그저 꿈을 좇는 일이 결국 권력자의 배만 채우거나 노동 계층의 의지를 꺾는 일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를 알고 사전에 방지할 수는 있을까?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현명하고 얼마나 똑똑해야 할까?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당하고만 있자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문제는 ‘맹신’에서 비롯됐다. 복서는 나폴레옹이 자기 편이라고, 자신들을 위하는 말과 행동을 보인다고 앞뒤 재지 않고 그저 믿어버렸다. 심지어 동물들의 낙원이라는 자신의 꿈을 리더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스노우볼이 이끌 때는 스노우볼을 그저 믿고, 나폴레옹이 이끌 때는 나폴레옹을 그저 믿었다. 풍차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한 것은 좋지만, 풍차만 만든다고 낙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동물들 모두가 힘을 합쳐 인간들에게 대항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이익만 챙기는 등의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데도, 자기의 편이라고 그저 덮어두고, 믿어주기만 했다. 이런 맹신의 결과는 결국 비극만 있다는 것을 복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보여준다.


소설 속 동물들은 그럼에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독자라면, 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화로 표현했지만, 동심을 파괴하는 수준의 잔인한 이 내용은, 다시 동물농장을 읽어본다면 대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박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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