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오르내리는 계단은 몇 개나 되지

밤 9시 글쓰기. 24.10.19. 관찰 묘사 작별하지않는다

by 쿰파니스


곽재구 시인이, 역이 있다고 했던 동네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녔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국민학교’라고 쓰면,

오타라며 ‘초등학교’로 바로 정정해 준다.

럴 때면 구한말쯤에 학교에 다니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5학년에 재학 중이니까 연식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학교 앞으로 국도 15호선이 지난다.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출발하여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이르는 도로다.

학교에 다녔던 70년대에는 차량 꽁무니에 뿌연 먼지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던, 신작로였다.


4학년 때,

아주 똑똑한, 아니 신기한 능력을 갖춘 친구가 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운동장 가 담장에 올라 차 구경을 했다.

학교 앞은 삼거리였다.

친구는 차가 좌로 갈지 우로 갈지 귀신같이 알아맞혔다.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얄미운 건, 꼭 나에게 먼저 물었다.

난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반 정도 맞추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기적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는 절대 비법을 전수하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은 차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당시는 신탁처럼 받아들였지만,

운전을 하면서 알고 나니 죄다 거짓말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

방향 지시등(친구는 깜박이라고 했다.)의 비밀을 말해 주었다.

그 대단한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보이더라는 것이다.


관찰력의 차이였다.

그 친구는 꼼꼼했고, 나는 얼넘어갔고.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십까지는 갔다.

대충정확한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요즘 이 때문에 고생이 많다.

글 쓰는 데 이런 민폐가 없다.

자세히 보지 못하니 글이 잘 써질 리가 있나.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중이다.

대가(大家)는 달랐다.


촛불이 꺼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타오르던 초의 심지 끝에서 검은 실 같은 연기 한 올이 피어오른다.

그 실오라기가 흩어져서 허공에 스며들 때까지 지켜보다 나는 묻는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분위기 잡는다고 촛불도 켰지만,

단 한 번도 꺼지는 모습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정말 그러한지 촛불에 불을 붙이고, 훅, 불었다.

세상에, 나만 몰랐다.


꽤 유명 작가인데 이름은 생각 나지 않는다.

글쓰기를 배우던 때, 명성 자자한 선생님 문하에 들었다.

반년이 넘도록 가르침이 없었다.

배우는 것도 없어 그만두겠다고 하자,

자기 집 계단이 몇 개나 되더냐고 묻더란다.

이 한마디로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라고 하는데,

그래야 사랑할 수 있다고.

언제쯤 그 경지에 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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