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쿰파니스 Nov 13. 2024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며

[밤 9시 글쓰기 36] 24.11.13. 낙엽 산책 가을풍경 도로

몇 년 전 일이다.

정전 보수 정비 공사로 종묘에 근무할 때였다.

예나 지금이나 건설 현장은 아침 7시에 작업을 시작한다.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만든 법인데 아직도 다들  잘 지킨다.

대개 6시 40분쯤이면 출근한다.

      

출근길에 맞추듯 종묘 직원도 일과를 시작한다.

관람객 입장 시간이 오전 9시,

두어 시간 전부터 청소를 해야 손님맞이 시간에 맞출 수 있어서다.

정기 휴무일인 화요일을 빼고는 변함없다.

     

그 넓고 긴 길을 비로 쓸고, 바람으로 날리고,

모아 놓은 것을 야적장으로 옮기고.

그런 난리가 없다.

청소가 끝나면 흙길이 맞나 싶다.

먼지 한 톨 없이 반들거린다.

차마 걷기가 죄송스럽다.   

  

봄과 여름은 치울 것이 별로지만,

찬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쓸어 모으는 것보다, 실어 내는 것에 더 많은 사람이 매달린다.   

   

문제는 낙엽만 치우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가을의 정취도 함께 쓸어낸다.

청소를 끝낸 길은 깨끗했지만 무언가 허전하다.

어디에도 가을은 없다.   

   

어느 해였던가.

낙엽을 치우지 않았다.

매일 푹푹 쌓여갔다.

바람이 머무는 곳은 발목까지 빠져들었다.

출근길이 조용했다.

관람객은 가을 분위기를 만끽했다.     


습관은 쉬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대개 아침 6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때론 산책하고 때론 조깅하며.     

나가 보면 청소하시는 분들이 벌써 다녀가셨다.

말끔하게 다듬어 놓았다.

길이 반들반들 윤이 난다.

가을 초입까지는 상쾌했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면 가을인데 숙이면 다른 계절이었다.

그 부조화가 불편했다.  

   

가을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두면 좋을 텐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일부 구간이지만 며칠 전부터 쓰는 것을 멈추었다.

제법 두툼하게 쌓였다.

제대로 가을 분위기가 풍겼다.

찾는 사람도 늘었다.

    

종묘에 있을 때,

낙엽을 치우던 분께 물었던 적이 있었다.

매일 쓰는 것과 가을이 끝나면서 한꺼번에 치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를.

하는 일이니 매일 쓰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한꺼번에 쓸면 흙에 묻혀 더 힘들다면서.

     

이곳은 포장길이니 그보다는 낫겠지만,

가을이 끝나고 나면, 그 사이 비라도 내리고 나면,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치우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낙엽을 치우지 않은 길이 가을 풍경에 더 어울린다고 여기지만,

모르겠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다만, 가을 기분을 만끽하며 걷는 발걸음에도

여러 입장이 섞여 있는 듯하니

마냥 기분만 낼 일은 아닌 것 같고.     

매거진의 이전글 결심 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