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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복 Nov 25. 2021

아즈마 씨의 독서 편력



이번에도 A4 용지 빼곡하게  呪文같은 注文이 들어왔다. 석장이다. 


이 몇 달 사이 공지영을 떼고 박완서에 들어가시려는 것 같다. 


코로나에 대한 긴급사태가 해제되어 책거리가 문을 연 것은 알지만 당분간 책거리를 찾지 못할 거 같다.

방역수칙을 그 누구보다도 잘 지킨 친구분이 코로나에 걸린 이야기며 그래서 당신은 더 철저하게 방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

전철이며 버스 등 많은 사람이 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며 가능하면 집에서 지낼 것이라는 근황 보고에 이어 동면 중 읽을 책들을 나열한 팩스다.


그러고 보니 작년 8월 15일경에는  당신이 손수 손글씨로 쓰고 만든 소책자를 봉투에 넣어 보내주셨다. 

소책자라고 할까. 

A3를 반으로 접은  그러니까 4페이지짜리 통신문 같은 스타일이다. 

한 달에 한번 만드시는지 타이틀 옆에 월 표기가 되어있다.

이 통신문을 임의로 월간 아즈마라고 한다. 

월간 아즈마  6월호에는 한국의 방역수칙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적혀 있다. 

소개하고 싶은 코너는 “확진자 수”와  “감염자 수”에 대한 한국어와 일본어 용어에 대한 아즈마 비평.

일본에서 쓰는  “감염자 수”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더 많고 심지어 감염이 되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그러니 매일매일 발표하는 감염자 수란 그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쓰는 “확진자 수”야말로 검사를 받아 감염이 된 사람만을 말하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하신다.

아, 정말 그렇네. 

귀퉁이에는 “확 찐 자”까지도 설명을 해 놓으셨다. 섬세하시네.


아즈마씨는 학교 교사를 정년 퇴임하신 분으로 책거리 오픈 당시부터  오는 단골이다. 

책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와 역사에 관한 이벤트에도 종종 참가하신다.

이 분 독서경향이 특이하다. 

테마나 작가를 정해 작정하고 파시는 분이다. 

일테면 동학운동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연구서든 문학 작품이든 리스트를 만들고

그 상관관계를 정리하고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관련 도서를 주문하신다. 

때때로 그의 정보는 오류가 있기도 하고 또 리스트 중에는  절판된 책들도 있다.

오류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절판된 도서는 중고로 안내를 하곤 한다. 

(우리는 가능하면 손님들에게 절판된 책이라도 중고도서를 찾아 안내하는 방침이다. )

이런 작업은 시간이 걸리고 꽤나 성가시다. 


언제가 아즈마씨의 이 성가신 주문에 대해 금요일 점장이 메일로 대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책 타이틀이 아닌 테마가 주어져 숲 속에서 비스킷을 찾아가는 메일이 며칠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다.

수없는 메일을 주고받으며 결국 주문을 받은 것은 중고책으로 단돈 500엔짜리.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고작 500엔짜리라니.

아즈마씨도 아즈마씨이지만 대응을 맡은 금요일 점장에게도 이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 했다. 

시간 대비 퍼포먼스가 안 좋네요. 

금요일 점장의 대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았다. 

“이런 분이야말로 오래도록 우리 책거리를 응원해 주실 분입니다.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내 인생 살아오면서 부끄러운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책거리를 하면서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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