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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복 Apr 24. 2021

一誠堂 서점의 아저씨들

책거리 오픈은 2015년 7월 7일. 점포를 얻어 실내 공사를 5월 말부터 시작하였다. 책장이며 카페 용 테이블 등은 오리지널로 한국에서 만들어 와 조립만 하면 되었지만 주방을 새롭게 내고 조명을 설치하고 무엇보다 입구에서부터 동선에 따라 어떤 책을 배열할 것인가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책장 설계를 할 때부터 배치를 염두에 두었지만 실지로 책들을 꼽아보니 위화감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쿠온에서 만든 책을 보이게 하고 한국에서 들어온 책들을 표지가 보이게 꼽아 두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그림책을 역시 표지가 보이게 진열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책장이 시작되는 곳에 역시 쿠온의 책을 꼽아두고 원서를 옆에 두었다. 아랫단을 넓게 하여 문구와 잡화를 놓았다. (책장이 시작되는 곳에서 문구, 잡화를 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오픈하고 나서 알았다. 손님들은 책 보다 더 이 코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 다음 책장에 인문, 역사서, 문학, 에세이, 시집 코너, 일러스트 에세이, 만화, 그림책, 전집류, 사진집, 영화, 미술, 음악 관련 서적, 한국어 학습서. 그리고 마지막에 번역에 관한 서적 코너를 만들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도 없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책방이 오픈하기 전이라 스태프들이 없는 상태에서 나 홀로 분투가 매일같이 이어졌다. 

어떤 책을 들여놓았는가 하는 셀렉션도 중요하지만 어떤 순서로 책을 배열하는가도 중요하다. 원하는 책을 찾은 후에 그 옆에 있는 책들에게도 눈길을 가게 하는 궁리가 필요하다. 

정답이 따로 없는 일이다. 감각에 의존하여 책을 넣었다 빼었다 하는 작업이라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쉬 지친다. 그날도 밤이 될 때까지 혼자서 작업을 하고 안쪽 출판 업무를 보는 곳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자 초여름의 비릿한 바람 냄새가 훅 들어왔다. 그리고 갑자기 곤방와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책거리는 3층이고 창문 밖은 따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밤 10시가 넘어선 시간. 곤방와!라고 하는 인사는 시간상 맞는 인사이기는 하지만 설마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기에 무서움증이 확 들었다. 놀란 모습이 상대에게도 보였는지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일성당 서점의 사카이입니다,라고 인사를 해 왔다.

일성당 서점은 책거리가 세든 산코도 빌딩의 옆 빌딩에 있는 고서점이다. 진보초에서는 드문 석조건물로  양서와 와서를 같이 취급하는 서점이다. 돌기둥이 웅장하여 앞을 지날 때면 괜스레 위축이 되곤 하였는데 그 일성당의 사카이상이라니.

일성당 서점 건물은  기역(ㄱ) 자로 서점 부분과 창고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 책방 안쪽 창문 맞은편은 창고로 쓰는 부분의 옥상이었다. 사카이상은 일성당 서점의 3대째 오너로 진보초 근처 오차노미즈 쪽에 집이 있어 종종 늦게까지 서점에 남아 일을 한다고 하였다. 일성당은 100년이 넘은 서점으로 진보초 고서점가를 빛내는 곳이기도 하다. 초창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직원들이 같은 건물에서 숙식을 하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옥상은 사카이 상의 정원이기도 하였다. 각종 식물들을 가꾸고 있었다. 키가 큰 벤자민이며 고무나무 잎들이 햇살을 받아 검게 빛나고 있었다. 심지어 토마토도 긴 화분 가득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그는 옥상에 나와 낮에는 긴 호스로 이 식물들에게 물을 주었고 밤에는 담배를 피웠다. 

처음 인사를 한 뒤로부터는 무서워하지 않고 내가 먼저 인사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햇볕이 좋은 오후였다. 역시 창문을 열고 일을 하는데 사카이상이 옥상에서 나를 불렀다.

“김상, 블루베리가 잘 익었어요. 나눠줄게요!” 

그러면서 손에 쥔 블루베리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이런 멋진 이웃이 있다니. 손을 뻗으면 닿은 거리, 메타포가 아니라 실화이다.

일성당 서점의 마 기타상은 매일 아침 책방 앞에서 서서 지난 가는 사람들에게 늘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다. 우리가 진보초에 왔을 때는 이 분이 일성당의 사장인 줄 알았는데 직원으로 일 성당에 들어와 40 년 (2021년 4월 현재 47년째) 넘게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책거리를 못 찾고 헤매는 손님들은 어김없이 일성당의 인상 좋은 마키타상에게 책거리의 위치를 묻고 이 아저씨는 군소리 없이 책거리를 안내해준다. 책거리 웹사이트도 체크하시는지 우리가 무슨 이벤트를 하고 어느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지도 다 꽤고 계신다. 아침 인사 나누면서 아는 척해주시는 아저씨가 실은 항상 고맙다. 책거리가 잘 굴러가는 것은 이 아저씨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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