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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복 Dec 13. 2021

글을 쓰는 손님


하야미상은 여전히 꾸준히 책거리를 찾는다. 늘 커다란 백을 들고 통이 넓은 바지에 오버 핏의 흰 셔츠를 즐겨 입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책방은 도서관이 아니라는 내 말 이후로 그녀는 뭐라도 하나는 구입을 하는 손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손님에게, 점장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놓는 것이다.

레지 앞에 달라붙어 싸움을 걸 듯이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하야미상. 스태프들의 스트레스 도수는 점점 높아가고 나에게 뭔가 조치를 내려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오픈하자마자 들어와 레지 앞에서 혼잣말을 하는 하야미상에게, 그렇게 할 말이 많으면 종이에 써서 달라고 점장이 한 마디 하였다고 한다. 쓸 종이가 없다고 하는 그녀에게 A4 용지 한 장과 볼펜을 건 낸 이후 지금까지 하야미상은 쓰고 있다. 2019년 여름부터 지금까지다.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책거리에 오는데 오자마자 칠성 사이다를 한 잔 시킨 뒤  두 시간 정도 집필에 몰입한다. 집필을 마치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쓴 글을 김상에게 전해 달라고 하고 조용하게 나간다고 한다. A4 용지 2-3장, 앞면과 뒷면을 빼곡하게 메웠다. 필압이 상당하여 마치 점자책 같다.

일본말을 한글로 풀어쓴 것이 특징이고 일본말과 한국어가 짬뽕이 된 문장이다. 아침에 본  와이드 쇼 내용이며 전철 옆 사람들의 대화 내용, 주로 들은 말들을 한글로 나열하여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혼잣말처럼 하던 말이 글로 된 것이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고  글 역시 그 사람의 생각이니 말과 글은 같은  선상의 것인가.


2020년 2월, 코로나가 덮쳐 와 세상이 어수선할 때도 하야미상은 변함없이 책거리에 찾아와 집필을 하였다. 그러다 4월, 5월 임시휴업을 하였는데 이때도 그녀는 우리가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을 알고 빼곡하게 쓴 종이를 주고 갔다. 


코로나의 정체를 모른 채 모두가 마스크 한 장에 의존하여 매일 감염자 수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였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 것이 이렇게 공포스럽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는 대구에 감염자가 많이 발생하여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바로 드라이브 스루, 등 방역체계가 잡혀가고 K-방역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야미상의 집필 내용에도 이런 이야기가 맥락 없이 등장한다. 뉴스를 따라 적은 듯한 내용이 많다.


6월에 들어서서 영업을 재개하였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 환기를 하고 사람이 오래 체제 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카페부문을 중지하기로 했다. 장고 모양의 의자를 가게 구석구석에 놓고 그 의자 위에 런천마트를 깔고 책을 세워놓았다. 근사한 진열대가 되었다. 그리고 6개의 테이블을 붙여 책을 펼쳐 진열대로 활용하였다. 북카페에서 북숍으로 바로 바뀌었다. 

간간이 손님들이 찾아와 책방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야미상도 오셨다! 바뀐 레이아웃에 가장 놀란 사람이 하야미상이다. 

이제 어디서 글을 쓸 수 있는가,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질문이 놀라웠다.

하야미상에게는 책방이 바뀐 것보다 단지 앉아서 글을 쓸 공간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2층의 카페에 데려갔다. 여기서 쓰시면 됩니다.


2021년 12월 지금도 하야미상은 2층 카페에서 종이 가득 글을 써서 김상을 찾는다.

스태프들은 이것을 하야미상의 러브레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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