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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복 Feb 20. 2023

일본 출판계 2016년을 돌아보며

김승복 (쿠온 출판사 대표)


⚫일본 출판시장 4조 8867억 엔이라는 또 다른 수치


일본의 유명한 민간 조사업체 중 하나인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이번 연도 출판 관련 사업자 총매출이 4조 8867억 엔에 달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전년대비 3.6% 감소라고 발표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배쯤 되는 금액이다. 이 조사는 이 회사에 등록된 146만 회사 중 출판사 1194사와 서점 799사를 추출하여 각사의 매출을 합한 숫자이다. 

지금까지 출판업계의 지표를 산출한 곳은 출판과학연구소로 이 연구소의 출판 유통사의 추정판매금액은 2015년이 1조 5200억 엔으로 가장 높았고 1996년에 비해 40% 감소했다고 보도해 왔다. 제국데이터뱅크의 서점 분야에 신고서점이 조사대상에 포함되었다고는 하지만 총매출이 4조 8천억 엔이라는 숫자는 눈부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서점 분야의 매출이 1조 3585억 엔으로 전년대비 4.8%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유통사들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서적이나 잡지 등 매출이 전년실적을 크게 밑돌았다고 하는데 비해 제국데이터뱅크는 서점 안에 카페, 잡화, 문구 등 복합화와 포인트 서비스를 하는 서점들이 늘어나 그 효과가 전체적으로 매출을 끌어올렸다고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서점들의 이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출판사의 경우 판매수익뿐 아니라 광고, 전자사업, 직판, 부동산, 시판하지 않는 자비 출판, 기업 출판 등으로 매출이 높아진 곳이 늘었다. 

이 제국데이터뱅크의 코멘트에서 주목할 부분은 2005년 총매출이 6조 7874억 엔이었고 10년이 지난 지금 28%가 감소하였으나 다양한 시도로 감소폭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는 대목이다. 이 회사의 데이터들은 금융권에서도 가장 눈여겨보는 데이터들이다. 감소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은 꼭 이웃나라 일본의 전망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서점의 매출이 오르고 있다는 것은 출판업계의 낭보임에 틀림없다. 이웃나라의 낭보가 대통령 스캔들로 타격이 심한 한국의 콘텐츠 비즈니스업계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시도로 감소폭을 줄여가고 있다는 팩트에 주목해 보았으면 한다.


⚫일본 전국 서점에서 열린 “처음 읽는 해외문학 페어” 제2탄

평소 해외문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전국 서점 약 40여 곳에서 “처음 읽는 해외문학 페어”  제2탄을 실시하였다. 각 언어권별로 유명 번역자들이 번역한 해외문학을 추천. 총 52권이 각 서점의 매대에 다양한 POP와 함께 진열되어 독자들의 발길을 잡은 것. 


9월호에도 썼듯이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포함한 해외문학의 번역출판은 일본 자국문학에 비해 불과 10%도 안된다. 그러나 충성도 높은 문학팬들은 그 충성심을 주변의 해외문학을 잘 읽지 않는 층에게 전파하는데 여념이 없다. 서점의 문예코너 서점원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문학팬들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에는  “서점대상”이란 상이 있다. 이 상은 올해로 13회째를 맞이했다. 이제는 일본 내 출판 관련 상 중에 주목받는 상이 되었다. 서점원들이 중심이 되어 자신들이 팔고 싶은 책을 선정하여 투표를 거쳐 뽑힌 책이 서점대상. 일본의 서점원들을 비롯하여 북디렉터 들은 참 부지런하다. 출판에 관한 단행본 중 단연 으뜸은 서점원들이 쓴 것들이 많다. 이 책들은 한국에서도 곧바로 번역되어 나오는데 올해만 해도 우치 누마 신타로의 “책의 역습”을 비롯하여 우다 토모코의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하바 요시타카의 “책 따윈 안 읽어도 좋지만”, 서점원을 인터뷰하여 쓴 이시바시 다카후미의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등은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거개가 읽은 것 같다. 이 저자들은 한국에서 번역서가 나온 후 출간기념 등 강연회를 여러 차례 가질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도 하였다. 사실 이들은 일본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작가들이다. 이 부지런한 저자들은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한국의 서점계, 출판계에 대해 일본의 다양한 매체에 기고를 하는 등 일본 출판업계에 한국의 정보를 그때 그대 알려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들이 전문지나 매스미디어에 올리는 한마디는 필자인 내가 10년 이상 한국 출판 정보를 알리는 것보다 힘이 세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샜는데, 서점원들이나 북디렉터들이 이번에 눈길을 준 곳은 일본문학이 아닌 해외문학이다.

준쿠도의 서점원이 대학교수에게 번역소설을 한 권 추천받아 읽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그 나라의 다른 작가들까지 찾아 읽다가 아예 해외문학 페어를 기획하여 열었다, 는 이야기는 이 일 년 사이에 일본의 출판계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다. 그 담당 서점원이 올해는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그로 인해 이 기획 자체가 무산될 뻔하다가 트위터에 올린 그녀의 메시지에 일본 전국의 서점들이 동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화젯거리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책만 진열하지 않고 유명 번역자들을 대거 등장시켜 “내가 권하는 해외문학”으로 북토크 이벤트를 열어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 소식은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 이 지면을 통해 알린다. 

지난 12월 12일 일요일에 있었던 이 이벤트는 150명 정원에 180여 명이 참가하는 아주 이색적인 이벤트였다. 평소 번역가들이 나오는 무대란 거의 없어서 순수 독자들뿐만 아니라 출판관계자들, 번역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듯한 축제분위기였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각종 언어권의 명실상부한 일인자 격인 번역가들  30여 명이 각 3분씩 자신의 추천도서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쿠온 출판사의 책도 52권 중에 당당하게 2권이나 들어가 있어(한강의 “채식주의자”,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 가슴이 뿌듯했다. 위 사진은 번역가 요시카와 나기 씨가 정세랑 작가의 `이만큼 가까이`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일본 전국 서점에서 동시에 1개월간 열린 페어에 우리가 만든 책이 2권이나 있다는 것은 한국에 있는 여러분들께서도 마음껏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이다. 

일본에서 문학서가 아닌 번역서의 비율은 그다지 크지 않다.(아, 다시 말하자면 번역서의 비중이 큰 곳은 아마 한국이나 대만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아동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번역서가 있는데 한국의 미래엔에서 나온 서바이벌 시리즈가 그것이다. 일본에서도 누계 600만 부를 넘어섰다. 아사히신문출판사는 이 타이틀로 영업이익률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전년대비 55%. 서바이벌 시리즈는 현재 63권까지 나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어판 대하소설 토지 간행 시작

 필자가 운영하는  쿠온출판사에서 이번에 박경리 선생이 25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를 일본어로 번역출판하였다.  <토지>를 일본에서 내보겠다 마음먹은 지 3년 만의 일이다. 전 20권에 달하는 대작 가운데 이제 겨우 1, 2권이 나온 데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완성된 번역본 1,2권을 들고, 일본에서 독자들 30여 명과 함께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문학기행으로 통영을 찾은 것. 매달 한번 모여 한국소설을 읽는 멤버들, 쿠온의 독자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한국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하였다. 우리는 매년 일본의 독자들과 함께 이렇게 한국에 문학기행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공지를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원이 찼다. 토지의 힘, 박경리 작가의 힘이다.

 통영은 일본에서도 개인 여행자들에게 서서히 알려지며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작고 깨끗한 골목길, 온 동네가 스케치북에 그린 수채화처럼 산뜻한 도시라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곳에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 혼자 나서기가 쉽지 않았던 이들에게 쿠온이 던진 유혹은 반가운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소설 <토지>의 문학기행이 아닌가. 그렇다. 소설 <토지>는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시간차를 두고 세 번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을까. 이 드라마는 일본에서도 방영이 되었고, 특히 세 번째로 제작된 김현주 씨가 서희 역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DVD로도 판매되고 있을 정도이다.


 <토지>는 구한말 1897년의 추석날에 이야기가 시작되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던 날에 끝이 나는 대하소설이다. 출생의 비밀이 있고, 로맨스가 있고, 복수가 숨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반 서민들이 아주 많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래서 소설 속이 어찌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등장인물이 점점 늘어나 아예 토지 독서노트를 만들어 이들의 이름과 특징을 적어가며 읽어야 할 정도이다. ‘토지독파단’(아, 도쿄에서 필자가 만든 독서모임이다. 토지를 다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7명이 ‘독파단’이라는 독서단을 만들었다)에서 이야기하려고 등장인물 배치도를 만들었더니 마치 수사극의 한 장면에 나오는 용의자 관계도처럼 되었다. 권수가 늘수록 더 복잡해질 것 같다. 이런 것이야 말로 대하소설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열심히 만든 <토지>를 들고 와 박경리 선생 묘소에 올라가 절도하고, 번역을 한 시미즈 치사코 씨가 인상적인 대목을 일본어로 직접 낭독하여 선생님께 들려드리는 시간도 가졌다. 투어에 함께 참가한 문예평론가이자 1987년 박경리 선생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는 가와무라 미나토 씨가 모두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민지를 겪어낸 많은 지식인들은 가급적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해왔는데 가슴 아픈 한 대목을 설명하는 중에 유창하지 못한 통역사에 답답해하다 나중에는 결국 당신이 직접 일본어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평소에 존경하는 언론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최정호 선생께 토지 일본어판을 드렸더니, 1930년대생인 그분은 “한국어판으로는 읽다가 여러 번 포기했는데 일본어판이니 한자가 있어 독파할 것 같다”라고 좋아하시며 이게 다 당신에게 남은 식민지 시절의 슬픈 유산이라 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한 권의 소설이 각자의 입장에서 과거를 불러일으키고, 또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게 하며, 이웃나라의 어떤 작은 지방 도시를 찾아가게 하고, 또 거기서 사람을 만나 사랑이 깊어지고. 사람들이 소설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 쿠온에서는 맨부커 수상으로 올 한 해 일본에서도 화제의 인물이었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였다. 아사히 신문 서평은 물론 주간 신초 등의 서평란에 실리는 등 한강 특수가 다시 시작되었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한강의 작품을 검토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올 정도다. 우리는 이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내년에는 일본의 독자들과 함께 광주를 찾으려 한다. 2-3회의 사전 공부모임을 한 후 광주를 찾아갈 것이다. 


쿠온에서는 토지 전  20권을 7년에 걸쳐 모두 일본어로 번역출판해 낼 예정이다. 다 만들어지면 20권을 박경리 선생 묘소 앞에 늘어놓고 선생님께 절을 올리고 싶다. 시작이 반, 이미 반을 다 한 셈이니 앞으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데리고 잘 다닐 것이다.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도 모쪼록 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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