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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복 May 19. 2021

책 욕심

06 舘野あきら先生

책거리에는 3500여 권의 한국어 원서와 500여 권의 일본어로 쓰인 한국 관련서를 진열하여 판매하고 있다. 


책장은 점포에 맞추어 오리지널로 만들었다. 맨 아래 단은 재고를 넣어두는 곳으로 문을 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문고리 스타일이 있어서 공방에 문고리를 샘플로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의 책들은 사이즈가 다양하기 때문에 책장 높이가 조절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또한 책거리 초기에는 공간을 둘로 나누어 안 쪽을 사무실로, 바깥쪽은 책방으로 하는 궁리를 해야 했다. 20평 공간을 가지고 15평은 책방으로 5평은 사무실로 한 것이다. 그래서 책방과 사무실을 나누는 거대 책장을 가운데에 두었다. 안쪽에 있으면서 손님이 들어오는 기척을 알아차리고 싶어 거래 책장의 중앙을 비워서 창호지를 발라 창문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이런 궁리들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다. 노트에 어설프게나마 그림을 그려가면서 어떤 분위기의 책방을 만들 것인가, 심지어는 오픈 1주년, 2주년, 3주년 기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까지 꼼꼼히 적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작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다. 초기에 어바웃 하게 신간 구매액수를 3000만 원  (2500권 분량)으로 산정을 하고 책장이 만들어지면 정확한 책의 분량을 내리라 했는데 이런 자잘한 데에 정신이 팔려 정작 책장이 만들어졌는데도 사입량의 조정을 하지 않은 채 일들이 진행이 되고 말았다. 책의 추문량도 그러니까 2500권만 한 채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채 오픈을 맞이하게 되었다. 


쿠온을 그 누구보다도 응원해주신 타테노 선생님의 체크가 없었다면 우리는 책장이 헐렁한 채로 오픈을 맞이 하였을 것이다. 선생님께 진행 상황을 말씀드리다 “ 그래 책은 몇 권이나 들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서야 책장을 체적을 재보고 약 4000여 권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아니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고, 주문해서 들어오는 책은 2500권인데.


아이고 헛똑똑이. 이를 어쩌누. 물론 주문을 하면 되겠지만..... 자금이 자금이 부족하다. 서둘러 방법을 찾아야 했다. 헐렁한 책장은 싫다. 궁리를 하다 보니 길이 보였다. 우리 집에 있는 내가 읽은 책을 책장에 꼽는 것이다. 점주가 읽은 책을 중고로 판매하는 것이다! 집에 와 책장정리를 하였다. 팔아도 되는 책, 간직하고 싶은 책을 골라보니 책거리에 가져갈 책이 500여 권 밖에 안 된다.


헛똑똑이는 다테노 선생에게 다시 하소연을 한다. 그러자 선생께서 당신의 책을 기증하시겠다고 하셨다! 


다테노 선생은 도쿄 도청 직원이던 시절 1968년부터 한국을 드나들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선생은 도쿄도청을 정년퇴직하고도 그때 맺은 인연을 시작으로 한국의 출판계 인사들과 교분을 맺는다. 선생은 일본의 출판정보를 한국에 알리고 반대로 한국의 출판정보를 일본에 소개하는 한일 출판계의 다리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내고 싶어 하는 한길사의 사장 김언호 씨를 데리고 시오노 상을 만나러 이탈리아까지 간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로마인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린 초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더 유명하다. ) 나는 지금도 한국 출장 일정을 잡을 때 꼭 다테노 선생님 일정에 맞추는 쪽으로 한다, 선생님을 따라나서면 한국의 출판사 대표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지금은 폐간이 된 출판 뉴스에 30여 년 넘게 한국 출판정보를 투고하셨다. 일본의 많은 출판인들이 선생님 덕을 보았을 것이다. 선생은 본인이 직접 번역도 하시고 한국문화에 대한 책도 쓰셨다. 게다가 “일본의 36인”이라는 책을 한국어로도 펴냈다. 


서울 국제도서전에도 선생은 빠짐없이 가시는데 언젠가는 선생이 단골로 묵는 인사동의 여관에 나도 함께 묵었다. 여관은 조계사에 가까워 새벽의 종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지만 아주 정갈한 곳이었다.  선생은 매일 아침 근처 아침식사가 되는 맛있는 식당들을 다 꽤고 계셨다. 아, 굴비구이에 콩나물국을 6천 원에 먹었던 그 집에 다시 가고 싶다.


선생 집에 처음으로 갔다. 3층짜리 양옥. 1층에 방이 두 개인데 선생의 서재와 서고가 있고 2층은 거실. 3층이 침실이었다. 서고는 벽면이 다 책장으로 가득하고 가운데에도 책장이 있었다. 한국어 책과 일본어 책이 가득하였다. 특이한 것은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이 펴 낸 책들이 상당히 많았다. (선생은 대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이라 중국어도 능통하고 조선족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서고에서 가져가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하셔서 눈을 반짝이며 반나절을 넘게 골랐다. 책을 펼쳐 목차를 보고 머리말을 읽으면서 아, 선생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사셨을까, 상상하며 골랐다. 다 고르고 선생의 서재로 갔더니 서재는 더 많은 책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 역사 시리즈가 있고 최근에 나온 책들이 많았다. 선생님 여기 있는 책들도 가져가고 싶어요. 했더니 그건 안 된다고 하셨다. 서재의 책들은 당신이 죽으면 가져가라고 하셨다. 욕심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재에 있는 책이 봐버린 터라 서고에서 골랐던 책들이 참으로 시시하게 보였다. 박스작업을 하는데 재미가 없었다. 신나게 골라 놓았던 책들을 박스에 다 넣지는 않고 골라서 넣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책거리에 놓을 자리를 상상하며 기쁘게 골라 놓은 책들인데...... 서재의 책들에게만 마음이 갔다. 

선생님 댁에서 그래도 7박스를 얻어 와 책거리에 진열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책장 가득 책을 꼽는 게 아니라 면으로 보여주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선생님의 책들이 책거리에 와서 책거리 세계관이  아주 넓어졌다. 선생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렇지만 지금도 선생 서재의 책들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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