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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Apr 03. 2022

사치스러운 일상

육아휴직 중입니다

요즘 들어 즐기는 가장 큰 사치는 집 창가에 앉아 있는 비둘기를 내쫓는 것이다. ‘비둘기, 너무 싫어.’를 외치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순간의 기분에만 흔들리는 마음을 느끼며 베란다만 쳐다본다.


육아휴직 중이다. 12시면 집에 오는 아이들 덕분에 딱히 뭘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늘 하던 대로 필라테스를 가고,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산책을 떠난다. 산책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본다. 두부, 콩나물 등을 주렁주렁 달고 도서관에서 눈에 들어오는 책 몇 권을 담아 아이들이 올 때까지 책을 읽는다.



10년 동안 하루하루를 초 단위로 살았다. 빼곡히 할 일로 시간을 채웠다.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에 빨래를 하고, 눈에 보이는 먼지들을 대충 훔쳤다. 하루에 정해진 급한 일을 빨리빨리 해치웠다. 정신없이 일하고 난 뒤 터질 것 같던 머리를 놀이터에서 식혔다. 동네 사람들이랑 뭐라도 떠들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그저 행복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일도, 육아도 제법 영리하게 처리하며 효율적으로 잘 사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없는 일을 했다. 남을 위한 일을 10년간 하며 돈을 벌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내 일이라도 없으면 나 스스로가 무시할 것 같아서 했다. 보통은 재미있었으나 가끔은 지쳐서 뭘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재택근무를 했다. 옆자리에는 동료 대신 아침에 잽싸게 돌려놓은 빨래가 있었고, 다른 옆자리에는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었다. 물리적인 옆자리 대신, 내게는 카카오톡으로 아침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버 동료 언니가 있었다. 서로의 10년을 뜨문뜨문 본 실장님이 있었다. 그 둘이 20대의 대학교 친구와 첫 직장 동료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육아휴직 대신 갭이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볼까. 나도 그럴싸한 브런치 카페나 와인바에 가서 앉아있어 볼까. 백화점에서 쇼핑한 명품 아이템들을 늘어서 SNS에 자랑해볼까. 그냥 다 귀찮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흥청망청 쓰고 싶다.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있을 테다. 사치스럽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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