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시작했다.
아니, 단식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계속해서 집을 비우기 시작하면서, 내 몸도 함께 비우고 싶었다. 코칭을 통해 마음이 정리된 것처럼 내 몸도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주면 얼마나 개운할까 싶었다. 대장내시경 하기 전에 관장약을 먹으며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장내시경 이후, 3일 정도 고생했던 기억이 몸서리치게 싫어서였다.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파는 출처 모를 레몬 디톡스, 녹즙 등을 마시는 것도 삼가고 싶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남편이 지나가는 말처럼 얘기했다.
“나 다음 주에 단식해.”
그는 먹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밤이면, 간식과 와인을 앞에 두고 텔레비전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많아서 함부로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단식을 하겠다고 한다. 회사 동료 부인이 하고 있는 요가원에서 진행하는 단식 프로그램인데, 3일은 물만 먹고, 나머지 3일은 죽만 먹으며 총 6일간 진행되는 것이었다. 남편 회사 동료 분도 회사 다니면서 성공하셨다는 말도 전했다. 남편 회사 동료분의 장인어른이 건강한 몸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알았기에 ‘나도 함께 신청해 줘.’가 절로 나왔다.
신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엄청난 양의 물이 도착했다. 김치냉장고가 꽉 찼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의 단톡 방에 초대되고, 이런저런 유의사항과 공지사항이 오갔다. 드디어 내일부터 시작이란다. 주위 사람들에게 ‘단식’을 알리고, 일주일간 약속을 잡지 않아야겠다 마음먹었다. 길을 걷다가 빵집을 보는데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빵집이 보여서, 빵이 먹고 싶으면 가서 빵을 사 먹으면 되는데, 내일부터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먹을 수가 없겠구나. 괜히 신청했나 후회되었다.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오늘 저녁부터 제대로 먹어야겠다. 내일부터 아무것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맥주도 마시고 싶고, 치킨도 생각난다. 달콤한 걸 먹어야겠다 싶어서 고구마 맛탕을 만들었다. 야채를 찹찹 볶아서 볶음밥도 만들었다. 고구마 맛탕에 설탕을 들이부었더니 정말 맛있게 되었다. 귀찮아서 한 끼 시켜먹을까 고민했던 저녁이었는데, 단식 덕분에 집밥을 한 끼라도 더 하게 되었구나. 다행이다. 달콤한 것이 몸에 들어가서일까.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내일 단식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기분일 때 얼른 잠들어야겠다. 아직 본격적인 단식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단식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드디어 오늘이다. 한약재 3팩, 꿀물과 동치미 국물을 마셨다. 신기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다. 위장에 뭔가 차 있는 기분이 든다. 첫 번째 팩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 안에 쌓였던 것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런데 머리가 계속 아파왔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힘들고 기운이 없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이 감기 기운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디톡스는 어떻게 된다는 거지? 알 수가 없다.
첫날에는 커피를 안 마셔서 그런가 했다. 정신이 멍 했고,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매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시는 커피가 자꾸만 생각난다. 아이들 데리러 놀이터에 갔는데,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자꾸 눕고만 싶어 졌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다.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서 일부러 일찍 잠들었다.
둘째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무게를 쟀다. 이렇게 힘든데 몸무게라도 많이 빠져있었으면 했다. 딱 1kg 빠졌다. 일주일 정도 밤에 맥주만 먹지 않아도 빠지는 몸무게다.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앞으로 5일을 좀 더 기대해보기로 했다.
둘째 날이 되자 첫째 날 머리 아픈 건 조금 가셨다. 단식을 지도해주시는 선생님 말씀으로는 단식 자체가 스트레스 상황이기 때문에, 몸에서 가장 약한 부위에 자극이 오기 때문이란다. 평소 어깨와 목이 아팠는데, 단식을 시작하자 이 부분에 자극이 온 듯싶다. 둘째 날 단식 공지사항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방귀처럼 느껴져도 반드시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 속옷과 바지를 챙기라고 쓰여있었다. 오늘내일 중으로 숙변이 나온다는데 뱃속은 조용하기만 하다. 조금의 기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 먹고 한 시간 자고, 점심 먹고 한 시간 잠들었다. 아이들이 배고프고 심심하다고 야단이다. 없는 기운을 짜내어 아이들 밥 먹여서 놀이터로 갔다. 평상시 같으면 잘 걷고 돌아다닐 텐데... 진짜 힘이 없다. 나도 모르게 놀이터 벤치에 누워버렸다. 나 없이도 너무나 재미있게 잘 놀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을 놀이터에 두고 혼자 집에 갈 수도 없고 난감하기만 하다. 갑자기 과자가 먹고 싶다. 우적우적 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
3일째가 되자 손끝과 발끝에 피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배고프진 않지만,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이렇게 몸이 흔들릴 수 있을까. 필라테스 쉬운 동작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에 핫팩을 꼭 껴안고 다녔다. 한약재 차도 따끈하게 마시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점심에 먹어야 하는 할당량을 다 채우고 나자 저녁에 한번 먹을 양만 남았다. 오늘만 버티면 내일부터는 미음으로 들어간다. 그냥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다.
4일 차, 총 2.3kg 감량했다. 쌀미음이 몸안에 들어가자 사르르 행복이 감돈다. 씹는 즐거움이란 이런 거였구나. 쌀미음을 씹을수록 쌀의 고소한 단맛이 느껴졌다. 한 숟갈 한 숟갈 정성스럽게 떠먹었다. 밥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즐거울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다. 쌀미음을 6회에 나눠먹고 나니, 내일부터 먹게 될 영양죽이 기대된다.
5일 차, 영양죽 시작이다. 오후부터 연한 커피나 사과 1/4 정도는 괜찮다고 했던 날이다.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을까.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이 되자 커피 생각이 사라졌다. 독한 커피가 들어가면 위를 쓸어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각종 야채와 소고기, 버섯이 가득 들어 맛있을 줄 알았는데... 간이 하나도 없어 심심하고 건강한 맛이다. 아이들 이유식이 이런 맛이었는데, 이걸 내가 감사하며 먹을 줄이야.
오늘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둘째 생일파티다. 한식 뷔페로 예약해뒀는데, 4-5만 원을 내고 아무것도 안 먹자니 아깝기까지 했다. 낙지죽과 반찬 몇 가지를 먹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맛의 향연이다. 이렇게 고소하고 단맛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곧이어 위가 콕콕 쑤시기 시작했다. 단식 시작하고 느끼는 첫 아픔이었다. 일부러 딱딱하고 매운 건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만 해도 위장에 무리가 가는 수준이었다 싶으니 그동안 위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켰던 것 같아 미안해진다. 위에 무리가 간다는 생각이 드니까 저절로 먹는 일이 멈춰진다. 좀 더 가게 되면 더 아플 수도 있겠다 싶은 긴장감까지 이어졌다.
6일 차에는 영양죽 3회를 먹는다. 5일 차에 먹는 영양죽의 양이 늘어난 것이다. 벌써부터 내일부터 먹을 수 있는 일반식이 너무나 기대된다. 매콤한 낙지볶음과 떡볶이, 라면 & 김치 등등 먹고 싶은 음식이 너무나 많다.
단식을 끝내자 묘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사람이 3일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구나. 내가 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구나. 하는 감정이 앞섰다. 머리도 아프고, 신경질도 참을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무척 뿌듯했다. 늘 과식해서 속이 더부룩하고 부대끼던 기분도 없어졌다. 지금껏 위에 무리되게 살았다는 자각과 함께 줄어든 위 크기를 다시 늘리지 않기로 했다. 위장에 무리가지 않을 건강한 식습관을 갖고 싶어 졌다.
단식과 함께 제일 먼저 바꾸고 싶은 습관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시는 커피였다. 아이와 함께 일찍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는 라이프 스타일인지라 아침에 여유 있게 커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을 사랑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커피 마시고, 일 시작하면서 루틴처럼 마시고, 오후에 점심 먹고 마시고, 오후에 사람들 만나면서 마시면서 하루에 커피 3-4잔은 기본적으로 마셨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시는 커피만 줄여도 커피를 무조건 한 잔 덜 마실 수 있었다. 단식을 함께 했던 남편도 아침 눈 뜨자마자 마시는 커피를 가볍게 패스했다.
위가 줄어든 만큼 간헐적 단식으로 이어가 보기로 했다. 건강한 음식과 쉼을 통해 가벼운 몸으로 만들고 싶다. 눈 뜨자마자 마셨던 커피도 끊고, 계란, 두부, 야채 등을 많이 먹는 습관으로 바꿔보고 싶다.
재미있는 건 단식을 하면서, 시간이 무척 많아졌다는 것이다. 먹는 일에 그토록 시간을 많이 썼나 싶을 정도였다. 뭘 먹을지 고민하고, 뭘 살지 결정한 뒤, 음식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시간이 상당했다. 단식을 한 뒤, 24시간이 27시간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지루하고 힘든 나머지 새로 생긴 3시간 동안 잠만 잤다. 아무리 자도 시간은 천천히 흐르기만 했다.
돈도 확실히 덜 쓰게 되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겠다. 외출하면 습관처럼 마셨던 커피도 끊었다. 간간히 선물 들어오는 기프티콘을 찾아 구매하러 다니게 되었다. 예전처럼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게 되니, 커피 한 모금 한 모금이 소중해졌다. 커피 마시면서 함께 먹었던 간식들도 줄여나갔다.
야채가 맛있어졌다. 야채 본연의 단맛에 눈 떴다. 브로콜리에 이렇게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이 있었던가? 놀라울 정도다. 에어프라이어에 간단히 구워 먹는 표고버섯도 맛있다. 단호박은 상상 이상이다. 감자도 맛있고, 계란도 맛있다. MSG에 길들였던 입맛이 순해지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맛이 있어서', '너무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아침식사로 삶은 계란, 아몬드, 요구르트 등을 선택하게 되었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있는 기분이다.
단식을 하면서 몸에 불필요한 것을 줄이고, 필요한 것들을 채우면서 나를 좀 더 아끼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잊고 지낸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몸도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