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원을 비우기 시작했다

by 작가 혜진

아이가 무엇이든 잘했으면 했다. 어릴 때 배워서 인생이 풍요롭다 느꼈던 것들을 누렸으면 했다.



나는 어릴 적 사교육을 많이 했던 타입이었다. 모범생이었다. 피아노를 6년간 배우고, 한자도 3년간 배우고, 무엇이든 꾸준히 했다.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가는 원정대 인솔자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3살부터 13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비슷한 연령대가 아닌지라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체험이 다른 아이에게는 지루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졸였다. 다같이 하우스오브댄싱 워터라는 쇼를 보러 가는 일정이었다. 권장 연령은 7세부터였기에, 3살 아이 엄마에게 의사를 먼저 물었다. 아이가 볼 수 있다면 관람하고 싶다고 했다. 무척 재미있는 쇼지만, 음향도 크고, 깜깜해지는 장면도 많아 무서워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쇼를 보는 내내 엄마는 3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끊임없이 설명했다. 아이는 엄마의 설명에 무서워하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아이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며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과연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매만져 줬던 적이 있었을까.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집 1호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바빴다. 내가 가르치고 싶은 일도 많았고, 1호가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영어뮤지컬, 바이올린, 영어, 사고력수학, 태권도, 피아노, 학습지, 방송댄스, 미술학원에 주말이면 숲체험, 천문대, 역사체험, 승마수업이 줄을 이었다. 아이들 라이드하느라 나도 숨이 가빴다. 운전과 주차가 서툴어 늘 마음을 졸였고, 심장이 콩닥거렸다. 집에 오면 피곤한 아이와 더 피곤한 내가 충돌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이렇게 힘들게 했으니 끝없이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 보상받기를 원했다. 나는 나대로 너를 위해 이렇게 고생했으니, 학교 숙제같은 것들이나 해야할 일들을 미리 미리 알아서 마무리하기를 원했다. 계속해서 아이에게 학원을 몇 개 정리하자고 얘기했지만, 아이는 늘 다 하고 싶다고 했다. 다 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학원 가짓수만 많았지 성과는 보이지도 않고 돈만 아까웠다.



동네 엄마들의 추천에 <공부가 머니>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제대로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한그릇 음식으로 식사를 대충 마치고, 밤이면 숙제하느라 엄마도 아이도 모두 힘들어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내 모습이었다. 억지로 학원 숙제를 마쳤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것만 하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제일 먼저 수학학원을 끊었다. 1학년때부터 꾸준히 3년간 다니면 고학년 때 효과를 본다는 곳이었다. 4교시 끝나는 날 틈새시간으로 보냈던 피아노도 그만 두었다. 아이는 피아노치기를 너무 싫어했다. 매일 가야했던 태권도도 2품까지 따고 그만두었다. 대신 아크로바틱을 배우고 싶어했던 딸을 위해 일주일에 2시간 리듬체조 수업을 듣기로 했다. 미술학원은 2학년까지만 다니기로 했다.



학원에 가지 않아 남는 시간을 모두 여백으로 남겨 뒀다. 뭘 해야할지 심심해하던 아이는 그 시간을 혼자 놀기 시작했다. 동생의 방해가 없어서인지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내기 시작했다. 조용히 책을 읽는가하면,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박스를 이용해 수납장을 만들고, 펠트지로 예쁜 케이크도 만들었다. 동생 생일 전날에는 브롤스터즈 캐릭터를 그리고 색칠하더니 코팅까지 해서 케이크에 꽂을 픽을 만들어 선물했다.



“엄마, 학원을 안 다니니까 놀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았어.”


“그래! 엄마가 얘기했잖아. 좀 더 학원을 줄여보자.”



그러고나서야 아이를 위해 사둔 아이템을 하나둘씩 정리할 수 있었다. 엄마표 영어를 하겠다며 샀던 책, 공구로 구매한 영어 DVD, 우쿨렐레, 발표회용 드레스까지도.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모습’에 맞춰 사용하지도 않은 채 집에 있던 아이템들이었다. 아이가 사회구성원으로써 해야하는 최소한의 교육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최소한’이라든가 ‘기본’만 한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애매모호하고, 지갑 열리기 좋은 단어인줄 안다. 갈대처럼 언제나 흔들리는 마음뿐이지만, 그럴때일수록 마음 굳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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