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을 시작하면서 유독 눈에 많이 띈 것은 영양제, 각종 즙, 마스크팩, 헤어팩, 핸드크림과 같은 제품이었다. 쓰지도 않고, 사다두기만 했던 제품들이었다. 홧김에 확 버릴까 하다가 하나씩 하나씩 피부에 양보하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영양제를 먹기 시작한다. 먹어야 하는 홍삼과 한약, 양파즙도 옆에 쪼르르 놓아본다. 혼자 먹으니 비우는 속도가 너무 늦다. 남편 것도 함께 챙겨두어 비움의 속도를 2배로 늘려본다. 남편은 아침마다 홍삼과 한약을 챙기는 아내가 너무나 낯선 모양이다. 냉장고에 쌓여 있던 건강 보조식품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조금은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같다.
연예인들이 한다는 1일 1팩에 도전했다. 도전하는 마음이지만, 매일 하기 쉽지 않다는 것 안다. 하겠다고 마음 먹은 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일 1팩 하겠다고 마스크팩을 20개를 사두었는데, 한달이나 지났는데도 10개밖에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비우다 보면, 언젠가 피부 미인이 되어 있겠지?
헤어팩은 샴푸 옆에 나란히 두었다. 샴푸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빼먹지 않고 하게 된다. 화장실 서랍장 안 깊숙한 곳에 넣어 두어 쓰지 않았던 거였다. 태국에서 유명하다고 꼭 사야 한다고 해서 샀던 아이템인데, 이제야 써본다. 그동안 도대체 머리를 어떻게 감았나 모르겠다. 헤어팩을 쓰자 머릿결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태국 여행 다녀온지는 꽤 되었지만, 마트에서 헤어팩 사겠다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라 쓸 때마다 기분도 좋아졌다.
핸드크림은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에 하나, 책상 앞에 하나 두었다. 그리고 수시로 발랐다. 화장실 다녀와서도 바르고, 할 일 없으면 바르고, 심심하면 발랐다. 겨울이 다가오니 건조해지기도 했고, 왠지 눈에 보이니 자꾸 바르고 싶어졌다.
그렇게 버리지 않고, 피부에 양보했을 뿐인데, 갑자기 몸에 엄청나게 신경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비우기 위해서 했을 뿐인데, 나를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이렇게 간단한 행동조차 하지 못했구나 하는 자각이 든다. 이제 나를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몸을 아끼고, 더 사랑하는 사람. 집을 비우기 위한 미니멀 라이프로 시작했지만, 나에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