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암막 커튼부터 걷어 낸다. 방 안으로 환한 햇살이 쏟아진다. 집이 동향이어서 좋은 점이다. 여름에는 새벽 5시 기상도 어렵지 않다. 미라클 모닝이 저절로 된다. 암막 커튼 사이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화사한 빛을 보며, 나른한 기지개와 함께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이들 아침 식사 준비이다. 유독 먹는 것을 '일처럼' 생각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간단하게 먹기 좋은 밥과 과일, 영양제, 유산균 등을 챙긴다. 남편 출근길에 먹을 과일도 잘라둔다. 삶은 계란은 단백질 때문에 반드시 챙기는 아이템이다.
신랑은 회사로, 1호는 학교로, 2호는 어린이집으로 다들 출근하고 나면 오전 8시 30분이다. 이불을 탁탁 털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하루 동안 갇혀 있던 공기가 나가고, 신선하고 시원한 공기가 집안을 채운다.
다들 나가고 없는 아침이면 혼자 어슬렁어슬렁 간단한 청소 준비를 시작한다. 설거지 거리를 전부 주방으로 가져다 두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린다. 러그를 털어 가지런히 접어두고, 아이들용 작은 의자는 모두 의자 위로 올린다. 아이들 방에도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는 것은 없는지 한번 돌아본다. 빨래 바구니까지 미처 못 간 어젯밤의 잠옷들이 흩어져 있고, 아침에 급히 나갔는지 학원 가방이 덩그러니 멈춰서 있다. 바닥에 있는 물건은 전부 책상 위로 올려둔다. 바닥에 있는 모든 물건을 위로 올리고, 5년째 튼튼하게 돌아가고 있는 로봇청소기를 켠다. 그것으로 우리 집 아침 청소는 끝이다. 로봇청소기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나 로봇청소기가 빨아들이지 못하는 큰 쓰레기만 미리 주워둔다. 이렇게 아침마다 짐을 모두 올려 로봇청소기를 돌려두는 것만 매일 해도 집이 꽤 깨끗해진다.
로봇청소기 일 시키고, 오늘 버릴 물건을 찾아 비움 헌팅을 떠난다. 어제 찾다가 눈에 거슬렸던 서랍을 하나 열어 본다. 1년째 쓰지도 않고 가둬둔 촌스러운 빛깔의 선물 받은 담요가 숨어 있다. 버리겠다고 꺼내고 나니, 옆으로 있는 줄도 몰랐던 동물 잠옷이 있다. 마침, 이번 주에 1호 영어학원에서 핼러윈 파티를 한다고 해서 의상이 필요하던 차였는데 마침 잘 됐다 싶다. 핼러윈데이를 위해 의상 따로 사기도 아까웠는데, 동물 잠옷으로 대체해야겠다. 책장을 뒤지다가 아이들 어릴 때 엄마표 영어 하겠다고 사뒀던 영어 CD를 발견했다. 결심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버려버릴까 하다가, CD 플레이에 걸어 두었다. 틈날 때마다 영어 CD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비록 아이들에게는 무의미한 소음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버릴 물건 헌팅이 끝나면 조르륵 모아 두고 사진을 찍는다. 블로거 반짝반짝 한나님(https://blog.naver.com/ssannagood)이 운영하고 있는 <나도 미니멀 라이프> 단톡방에 올려둔다. 이건 이래서 버리고, 저건 저래서 버립니다. 이렇게 중얼중얼 이유를 써서 올려놓는다. '쓰는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왜 버렸는지 이유를 간단하게 써서 버리는 것만으로도, 그냥 버릴 때와 확연하게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적어도 버리기로 결정한 물건을 다시 사는 일만은 방지할 수 있다.
남기기로 결정한 물건에 대해서는 좀 더 애쓰면서 아끼게 된다. 뭔가 더러워지면 생각도 하지 않고 버려버리곤 했는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애쓰게 되었다. 김치 냄새가 가득 밴 통이 여러 개 나왔다. 다시 쓸 수 없을 것 같아 버릴 까하다가 네이 X에 검색했다. 물과 설탕을 1:3으로 통에 채워 하룻밤 재워둔 뒤 햇살에 말려두면 말끔해진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런 걸 봐도 미뤄두기만 했다. 사실 1분만 투자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자리에 앉아 꼼지락거리고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설탕물을 만들어 통에 부어 넣는다. 수고롭지 않지만, 작은 수고를 더하면 집이 한결 말끔해진다. 며칠 동안 끙끙거리며 째려보기만 했던 얼룩이 사실 물티슈로 한번 쓱 닦아내기만 해도 깔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청소가 즐거워졌다.
고백한다. 나는 정말 청소를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청소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까웠다. 청소하려고 결혼한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리고 청소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더러움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웬만한 더러움에는 참고 살 수 있는 인내심까지 탑재했다. 그러나 짐을 꾸준히 버리고, 쓸고 닦기 시작하면서 아주 작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보면 욕할까 봐 머뭇대던 집 공개도 자신 있게 시작했다. 커피 한잔 하면서 내게 소중한 지인을 초대하기도 하고, 아이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집 정리가 간단하게 끝난 시간은 9시. 그때부터 엄마의 작업실은 시작된다. 커다란 컴퓨터를 앞에 두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해외 관광청 온라인 콘텐츠도 만들고, 응모해보고 싶었던 공모전 수기도 작성한다. 그동안 '남의 글'쓰느라 바빠서 내 글은 쓰지 못했는데, 지금은 내 글을 쓴다. 입금액도 줄어들고,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나 하는 불안감도 스치지만, 그래도 괜찮다. 마음의 중심을 바로 세우자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이 함께 섰다.
지금까지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었다. 어쩌면 생각하기 귀찮았을 것이다. 현재를 꾸역꾸역 보내며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이 둘 키우며, 일하면서 사회생활도 하고 있고, 바이올린도 배우고, 필라테스도 배우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전혀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 인터넷이 자꾸 멈추는데도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서 점검하려고 하지 않았다. 고장 난 전동 킥보드는 버리지도 않고, 수리도 하지 않으면서 6개월 넘게 베란다에 방치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내가 비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그래서 지금 할 거야? 말 꺼야?’라고 되물으며 나 자신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다 보니 무엇이든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별 일 없이 산다. 늘 안정적인 집, 안정적인 마음, 건강한 몸속에 '제대로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스민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먹으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내 힘으로 집을 치우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아이들 마음과 신랑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보여서일까. 그냥 편안하고, 고요하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누군가의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는 상태다.
오후가 되어 학교 &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집에서 가장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고, 놀러 나간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로는 경쟁에서 벗어나, 홀로 트랙에 빗겨 나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천천히 가고 싶다.
별일 없는 나의 사소한 일상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