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예쁜 집이 갖고 싶었었다. 인테리어 업체의 블로그를 운영 대행하고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당시 북유럽 인테리어, 화이트 인테리어 등의 이름이 한창 유행이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뜨는 집들은 너무나 예뻤다. 사람 사는 곳이 맞나 싶을 만큼 너무나 정갈했다. 가구에서는 품격이 느껴지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소품 하나하나가 빛났다. 주머니 사정이 퍽퍽해서 비싼 가구를 살 수 없고, 저렴한 가격의 소품을 마구 사들이며 나의 관심을 표현했다. ‘예쁘다’’고 생각되면 바로 샀다. 크리스마스, 핼러윈 같은 시즌성 상품도 놓칠 수 없었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내가 많이 안쓰럽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목적도 없이, 그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블로그 속 인테리어 제품을 무작정 따라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들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사놓은 인테리어 소품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집이 예뻐지기는커녕 더욱 어수선해지는데 기여했다.
최근에 미니멀 라이프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 한 권을 읽고 기함을 토했다. 깔끔하게 꾸며진 집 사진을 두고, 사진 속 제품 정보를 빠짐없이 제공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니까 예쁘지? 너도 빨리 이런 물건들 좀 사봐. 그러면 너도 미니멀 라이프 살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이런 책이 ‘미니멀 라이프’라는 이름 때문에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면, 적극 말리고 싶다.
미니멀 라이프는 또 다른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심플 인테리어라는 이름으로 범주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니멀 라이프는 내 삶에 대해 자발적으로 선택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물론 비움의 최종 목적지가 ‘예쁜 집’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미니멀 라이프의 목표였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좋아하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고, 물건을 낭비하지 않고 샀으면 했다. 그리고 엄마로서의 사소한 일들이 줄어들었으면 했다. 예를 들면, '엄마, 가위 어디 있어?'라는 질문이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정도 수준이랄까.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은 꾸준함이었다.
꾸준히 비워 내다 보면 길이 보였다. 더 비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서랍도 한 달이 지나서 다시 보면 비울 것이 보였다. 비워내다 보면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서랍 하나를 비워냈을 때의 성취감은 작지만 소중했다. 그리고 한 달 후 같은 서랍을 마주했을 때 다시 비움이 찾아왔다. 더 비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버릴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툭 하고 튀어나왔다. 냉장고 속 소스도 한 달 정도 보지 못하면 유통기한이 지나기 마련이었다. 냉동칸도 그때그때 정리해두지 않으면 금세 꽉 차 버렸다.
몇 년간 집을 정리해야지 끙끙거리고 있었다. 쌓여있는 짐을 보면서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다. ‘언젠가 날 잡아서 한 번에 정리해야지.’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못했다. 어제는 아이들 소풍이 있어서, 오늘은 엄마들 모임이 있어서, 내일은 시댁 제사 등등. 매일매일은 비우지 못할 수만 가지 이유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쩌다 비우기 시작하면서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없었다. 쓰레기를 비우고, 고장 난 아이템을 비우고, 내 욕심도 함께 버렸다. 그러면서 내 삶의 중심이 바로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남의 말에 괜스레 휘둘리던 각종 물건으로 허덕이던 과거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매일 비우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오마에 겐이치는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라고 했다. 시간을 달리 쓰고, 사는 곳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매일 비움에 시간을 쓰다 보면, 사는 곳이 달라진다. 새로운 삶이 찾아온다. 내가 제대로 살기 위해 비움을 선택하고 받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