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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컵플래너 Jan 23. 2020

취준생

어떤 하루

무엇을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서 밤이 되어 

이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까만 글씨가 허우적댄다.

이 길고 긴 시간에서 꺼내 달라 허우적댄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아마 허우적거림의 연속이겠지.




초등학생 때 나의 하루는 5시간.

놀다 보면 해 저물고 밥 먹으면 자야 할 시간.


중, 고등학생 때 나의 하루는 10시간.

빠른 듯, 느린 듯 알게 모르게 흘러간 시간. 


'이만큼 했는데 아직? 뭐 했다고 벌써?'


'벌써'와 '아직'을 숨 쉬듯 내뱉으며

책장을 넘기는 것이 삶의 전부.


대학생, 나의 하루는 15시간.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이 세상 쉽고,

도전하는 것이 세상 두려울 것 없던 날들.

대학이라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


취준생, 나의 하루는 24시간.


목적 없이 떠도는 물고기.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싶지만 힘이 부쳐

몸을 맡겨버리는 편이 현명하다 여기고


주체성과 방향의 상실을 

'자유'라는 단어로 포장.




하루 5시간이었던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

원초적 욕구 충족을 생의 목적이자 전부로 삼고 싶지만


현실에 두 발 묶인 자유는 

자유 아닌 구속.


철창 없는 감옥에서,

쇠사슬 없는 죄수 되어 오늘도 멀끄러미.


밥은 나온다며 가끔 히죽대고 웃는다.




감옥에도 햇살은 비칠까.

내일의 태양은 나의 태양일까.


가끔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태양으로 착각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구조 신호를 보낸다.


금세 방향을 틀어 옆방을 비치는 햇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감사한다.


까마득한 어둠을 뚫고

희미하게 들리는 숨소리에 감사한다.


아직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한다.




감사로 오늘을 산다.

감사로 기지개를 켜고

감사로 내일의 태양을 꿈꾼다.


생의 모든 것이 감사하다.

없어도, 잃어도 감사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눈물겹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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