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컵플래너 Mar 13. 2020

관계의 유효기간,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슬기로운 관계 생활을 위하여 

"이번 주 OO에서 밥 먹자. 맛집이래."

 

답장을 기다렸다. 묵묵부답이다.

바쁘겠지. 요즘 바쁘다 그랬으니까. 

확인하면 주겠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묵묵부답.


"OO 여기 맛집이라는데 같이 갈래?"


남자 친구도 아니면서. 집착하는 걸까.


슬그머니 불안해졌다. 숨소리가 빨라졌다. 

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3년, 

무언가 잘못한 일은 없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기억나는 게 없다. 큰일이다.

카톡이 울렸다.


"내가 요즘 바쁘다 했잖아! 

바쁘다는데 왜 불러? 

시간 되는 사람이랑 가."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 그리고 느낌표. 

심장이 턱, 조였다.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친구와의 인연은 끝이었다.




이런 일은 늘,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잘못'을 찾으려 애썼고,


'나의' 할 일에 굴리기도 바쁜 머리를

'남의' 감정 파악을 위해 굴렸다. 


참, 

열심히 굴렸다.


결론이 나지 않는 고민의 끝은 허무하게도, 절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생각 싸움에 지쳐갈 즈음,

상대방은 툭, 쉽게 끊고 달아났다.


달아난 곳은 

관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행성만큼

아득하고 먼 곳이었다.




재미가 아닌

생존을 위한 방탈출.


실낱같은 단서라도 붙잡기 위해 버둥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폭발물이 터져 끝날 것 같은 절망.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잘못'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 지난 후에야,

접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잘못도,

친구의 잘못도,

상황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유효기간'이 끝났을 뿐.


그렇다.

모든 인간관계 '유효기간'이 있다.


유효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서럽고 싫고 눈물 나도,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부모, 형제조차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겪는 

'죽음'이라는 유효기간이 있다.


제 아무리 각별한 사이,

남편이나 아내, 30년 지기 친구라도


서로를 향한 감정이 식으면

유효기간은 오늘로 끝날 수 있다. 연장은 없다.


이토록 가벼운 '관계'라는 것에

어느 순간부터 싫증 났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란

나의 치부를 가장 잘 아는 '남'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가볍지 않은, 유효기간이 없는,

싫증 나지 않는 관계.


누구나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네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면 돼'


'아무 이유 없이 관계가 끝나진 않아. 

분명히 누군가 잘못했을 거야.'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많아.'


주위의 조언과 위로는

추상적이거나 옳지 못했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도, 떠날 사람은 떠났고

아무 이유 없이 관계는 끊어졌으며

좋은 사람은 나와 끝까지 관계가 없었다.


두려움이 찾아왔고,

유효기간을 자의적 판단으로 정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5년 이상 갈 수 있겠다.'

'이 사람은 길어봤자 1~2년이야. 

친해지면 위험해.'


이런 생각과 판단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아 관계를 이어가거나

유효기간 없는 관계를 맺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이다.


유효기간이 존재함을,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아무 잘못 없어도 끝날 수 있음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과 

크게 상관없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는 것.


두려움과 어지러운 생각이 사라졌고

대인기피증도 자연스레 치유되었다.




나 자신조차 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허비하지 말자.


관계,

가벼워도 괜찮다.


오늘까지여도, 괜찮다.


이제,

조금은 자유로워지자.


서로를 진실로 대했던 시간이 

진심이라면,


유효기간 있는 행복도

축복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취준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