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사에게 투표하세요.
누가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 아니랄까 봐 하다못해 리더십에도 등수를 매기나 싶은 분도 있겠습니다만, 누가 더 낫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보다는 아래 순위에 있는 상사들이 자기반성의 시간을 잠시라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쓰는 글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일 좋은 리더는 역시나 나에게 맞는 리더입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떤 상사가 최상의 상사냐에 대한 정확한 답은 주관적이라는 뜻도 될 것 같습니다.
구성원이 매기는 랭킹은 얼마든지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 특히 기업이라는 조직은 실적과 성과를 내야 하고 목표를 실현하는 게 최우선이죠. 오늘 다룰 리더십 랭킹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그럼 꼴등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능력이 있건 없건 성격이 좋든 나쁘든 그래도 뭔가 해보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장점이라도 있는 법입니다. 밉지만 그래도 1% 정도는 그 속이 이해는 된달까요.
하지만 무기력한 상사, 그것도 자기밖에 모르면서 무기력한 상사는 정말 답이 안 나옵니다. 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으면서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안 되는 일도 또 없는. 그러면서 자기 이익은 칼같이 챙기는 사람 말이죠. 자기한테 생기는 게 없는 일은 전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실 꼴등이라고 하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극단적인 유형을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몰라 유형이야 말로 조직 전체를 숨 막히게 합니다. 조직 내 구성원 모두를 무기력에 빠뜨리는 거죠.
무기력은 여러 가지 파급효과를 낳습니다. 조직 분위기와 성과도 성과지만 특히 구성원들 간 긴장이 생기기 쉽다는 게 문제지요. 무기력해진 일상 속에 어떤 변수나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대응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안락함'을 파괴한 불청객이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쓸데없는 일 벌여서는 말이야.. 하고 짜증만 나는 거죠. 그리고 이런 무기력함은 업무뿐만 아니라 개인 생활에도 영향을 줍니다. 업무에서 어떤 활력도 느껴지지 않으니 그 우울감이 개인 일상까지 전염되는 거죠.
무기력 유발자인 이런 상사들에게는 어떤 리더십 이론도 소용이 없습니다. 변화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으니 리더십 방법론이 효과가 있을 리가 없죠. 직위가 주는 알량한 권한만 즐길 뿐입니다.
아무런 의욕이 없는 상사보다 그나마 조금 나은 상사이지만 여전히 최악에 가까운 상사가 ‘난 잘하고 있는데 니들 왜 그래’라는 유형입니다. 이 상사들 역시 변화나 리더십에 대한 어떠한 의욕도 없습니다. 왜냐면 이미 잘하고 있는데 뭘 변화하고 뭘 배우려고 하겠어요.
무기력한 상사가 부하들을 질식시킨다면 이 유형의 상사들은 부하들에게 할 말이 없게 만듭니다.
- 팀원이 아이디어를 낸다 ▶ 내가 전에 해봤는데, 그거 안돼
- 업무 환경이나 프로세스를 개선해달라고 건의한다 ▶ 나 때는 그런 것 없이도 일만 잘했는데?
-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리스크를 전달한다 ▶ 내가 알아서 다 해놨으니 괜찮아
실제로 문제가 없으면 능력자인데, 그냥 본인이 문제라고 못 느껴서 대응을 안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없을 수가 없죠.
부하직원들만 죽어납니다. 상사가 신경 안 쓰고 챙기지 않는 수많은 디테일을 다 책임져야 하거든요. 팀원들을 분주하게 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기력 유발자보다는 낫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악만 남게 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이런 상사들이 또 자기 윗사람에게는 잘한다는 점입니다. 정치질도 잘하고 심지어는 윗사람 말에 죽는시늉까지 합니다. 자리보전을 아주 잘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그 윗사람이 "너네 팀 문제 있던데 어떻게 해결할 거야?" 한 마디 하면 그제사 발등에 불이 떨어집니다. 안 그래도 상사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든 팀원들을 더 쥐어짜게 되는 거죠.
윗사람에게 보고할 정도까지 문제가 마무리되면 다시 평소 모드로 돌아갑니다. '역시 난 잘해', '그게 무슨 문제야?'로 되돌아가고, 근본적 이슈 해결은 저 멀리로 그리고 직원들은 또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게 되는 거죠..
위에서 소개한 두 가지 유형과 비슷하게 대책 없는 입장입니다. 특히 팀원들 입장에서요. 5위는 바로 예민 보스 상사입니다. 꼴등과 꼴등 앞보다 결과는 잘 만들어내니 5위로 놓긴 했지만 사실 도긴개긴입니다.
권위에 쩔어있다는 표현이 적확한 사람들입니다. 불안도가 높고 정신줄이 굉장히 가늘어서 본인이 공격받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잘 삐집니다.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나 감정을 유발한 당사자와 정면으로 마주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들은 얇은 정신줄로 인해 파이팅 넘치게 싸우는 걸 잘 못합니다. 그래서 돌려서 까거나 빈정대면서 묘하게 짜증 나게 만듭니다.
- 부하직원이 본인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 넌 잘나서 좋겠다.
-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뭔가 해보겠다고 하면 ▶ 나도 책임 못질 일인데, 뭘 니가 해?
- 직원이 성과를 만들어오면 ▶ 그렇게 난리를 떨어놓고 이것도 결과라고 가져오냐?
- 직원이 입바른 말을 하면 ▶ 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게다가 자리보전 욕구는 엄청 강해서 평소 직원들을 들들 볶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부하직원 책임으로 돌리기 일쑤죠.
직원들의 존경 따위는 받을 리가 절대 없지만, 어쨌든 불안 때문에 부지런 떠는 경우가 많아서 성과는 최소한의 수준으로는 만들어 냅니다. 가끔 당차고 들이받는 성격의 직원에게는 의외로 만만한 상사이기도 합니다. 아주 아주 얄팍한 잔머리도 많이 굴리기 때문에 부하직원 입장에서 적응이 많이 되면 이렇게 저렇게 활용할 여지가 많은 상사이기도 하거든요.
불안도 별로 높지 않고 의욕도 나름 있고 자기가 완벽하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는 유형입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게 많고, 내가 아는 게 많고, 내가 책임자이니 니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에 가까운 상사입니다. 쉽게 말해 라떼 좋아하시는 꼰대죠.
다만 자기가 아주 유능하다거나 개선할 점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름 노력도 합니다. 이런저런 조직문화니 리더십이니 하는 책도 읽고, 여기저기 세미나 같은 곳들도 잘 다니죠.
그러고는 배운 걸 실천해보겠다고 직원들을 귀찮게 합니다. 경청한다고 하면서 회의실에 직원들 가둬놓고 "편하게 의견들 내 봐"라고 한다거나, 권한 위임하겠다고 해놓고는 "그걸 왜 니 맘대로 해!"라고 하는 식이죠. 그나마 꾸준히 일관성 있게라도 시도하면 다행일 텐데, 한 두 번 해보고는 '역시 하던 대로 하는 게 최고야', '그냥 무식하게 쪼아야 해', '요즘 애들은 안돼'라고 멋대로 결론 내립니다.
소소한 장점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과 꼼꼼하게 챙기고 남들 앞에서 부서 자랑, 팀원 자랑도 할 줄 압니다. 대체로 영업 조직의 상사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유형이기도 하죠.
부하직원 입장에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상사들입니다.
사람 좋습니다. 착하고, 이야기 잘 들어주고, 가혹하게 몰아붙이거나 비인간적으로 막말을 뱉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죠. 아마도 회사 밖에서 만났다면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유형입니다.
이런 분들이 부족한 건 두 가지입니다.
일단 업무 능력이나 부서 장악 능력이 떨어집니다. 딱히 머리가 나쁘거나 의욕이 없어서는 아닌데, 꼼꼼하고 세심하게 챙기는 것에 비해서는 구멍이 많습니다. 소심한데 세심하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큰 그림을 보거나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떨어지죠. 순발력은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전체의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눈이 있으면 순간순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올라갑니다. 이 유형의 상사분들이 큰 그림을 잘 못 봅니다. 때문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시죠.
그러다 보니 이런 상사들의 부하 직원이 타 부서의 상사나 임원들에게 다이렉트로 지시를 받고, 그 결과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런 걸 또 커버를 못합니다. 이러면 직원 입장에서 정말 짜증 나죠. 이런 경우는 빼면 그래도 그럭저럭입니다.
게다가 이런 분들이 영업팀에 있으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라떼 상사들보다 성과를 못 만들어냅니다. 아무래도 전투력이 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유형은 주로 영업회사의 마케팅팀이나 총무팀 등 지원/관리 부서의 상사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업 중심인 회사에서 마케팅팀은 좌천되는 부서거나, 허울만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성과만 놓고 본다면 하위권에 있어야 하지만 최소한 직원들에게 인간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아닌지라 3위에 놓았습니다.
일단 능력자입니다. 머리 좋고, 일 잘하고, 부서 장악력 좋습니다. 대체로 말도 잘하고 상황 파악도 빠르고 진취적입니다. 필요하다면 자기의 상사에게 들이받기도 합니다. 이 분들의 최대 장점이 이겁니다. 철저하게 목표 지향적이라는 점.
하지만 저돌적이라는 표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줍니다. 차라리 집요하다 혹은 정말 무섭다 같은 느낌을 더 많이 줍니다. 자신과 부서의 목표에 대해 정말 질릴 정도의 집중력과 집요함을 보여줍니다. 엄청나게 경쟁적이고, 필요하다면 경쟁자의 발밑에 구덩이를 파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직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아요. 어떻게든 결과를 내는 사람이니 덕분에 성과급도 받고 승진 TO도 만들어주는 사람이니까요. 아주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실적 이외의 걸로 귀찮게 하지도 않습니다. 아주 가끔은 꼰대스러운 표현도 쓰지만, 그런 사소한 자기 자랑이나 부서원 개개인의 개인사에 별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성과가 나지 않거나 진도가 느리면 헬게이트가 열립니다.
사람 잘라내거나 동의 없이 다른 부서로 보내버리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막말이나 욕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심정이나 입장을 고려하며 말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이고 신사적인 말투로 직원의 인격과 자존감을 깎아내립니다. 성과를 못 내는 직원은 가치가 없으니까요.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직원이라면 큰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실적을 내고 있거나,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는 직원들에게는 환영받는 상사입니다. 신속하게 일을 진행시키며 군더더기도 없고 업무 외 시시콜콜한 지적은 하지 않으니까요. 꼰대들처럼 라떼도 만들지 않습니다. 말로 하는 자기 자랑보다는 경쟁과 숫자와 결과가 지상 과제인 상사입니다.
대체로 전략부서나 기획부서, 마케팅 팀장 등에서 많이 보이는 유형 같습니다. 전략 컨설팅이니 투자은행이니 하는 곳에 가면 정말 하나 건너 하나인 듯한 비율로 보이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목표와 비전을 집요하게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마음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상황에 따라 여러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필요하다면 한없이 냉혹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한없이 이야기 듣고 반성하는 모습도 있고, 직원들에게 진솔하게 코칭하는 모습도 있으면서도 급하면 다시금 목표를 부여잡고 강하게 이끌고 가는 모습도 있습니다. 인간적이지만 때때로 목표지향적이고, 때로는 권위적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비전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는 사람이죠.
너무 잘하기 때문에 밑에서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도무지 부족한 구석이 잘 안 보이거든요. 그러면서도 부하직원들과 적절한 거리감을 잃지 않습니다. 최고의 보스죠. 저도 사회생활 21년을 하면서 만나본 수백 명의 보스 중에서 딱 한번 만나본 적이 있을 정도로 드문 사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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