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의 효율을 높여봅시다.
온 나라로 확대된 코로나 19 사태가 이제는 출근 풍경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소수의 외국계 기업이나 스타트업만 시행하던 재택근무를 삼성, SK 등 주요 대기업까지 시작했으니까요. 지금이야 재택근무가 바이러스에서 도망치기 위한 미봉책이라고 해도, 아마도 국내 기업들이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일하는 방식이라는 맥락에서의 재택근무에 대해 한 번 다뤄보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재택근무는 물론, 유연 출퇴근과 유연 좌석제를 함께 시행하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해진 시간에, 아니 그보다 눈치껏 일찍 출근하고 상사의 퇴근을 본 뒤에나 회사를 나서는 게 미덕이었던 시절인지라 리모트 워크를 시행하는 회사에 다니던 저를 부러워하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물론 출퇴근에 드는 시간 투입이 없으며 내가 일과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은 크나 큰 장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던 단점도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 단점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얻는 루트는 대부분 시각과 청각을 통합니다. 이런 작용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즉 회사에서 회의를 하며 오가는 이야기를 듣거나, 동료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 신경 써서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우리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기계에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 뇌에는 메인 처리장치와 보조 장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일상적인 정보는 보조장치에서 처리하고 우리에게 중요하거나 관심이 꼭 필요한 일에만 메인 장치가 관여합니다. 사무실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많은 것은 보조 장치로 처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리모트 워크에서는 시각 및 청각 정보의 습득이 특정 상황으로 제한되어 있고, 여기에 의존해 업무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두뇌를 더 많이 쓰게 됩니다. 즉, 평소보다 화면 너머로 보이고 들리는 제한된 정보들을 모두 의식을 통해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메인 장치가 많이 작동하게 되고 이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쉽게 느끼는 상태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출근할 때보다 업무&일정관리 압박이 더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업무 일정 조정이 필요한 경우에 사무실에서는 이에 관해 논의하기가 쉬웠습니다. 결정이 쉽 다기보다는 논의를 시작하기가 용이했다는 것이지요. 그냥 상사랑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재택근무의 경우에는 이러한 논의의 유연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변동사항이나 필요성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유연성이 떨어지다 보니 오히려 업무 압박이 커진 것이죠. 즉, 약속된 데드라인을 칼같이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므로 오히려 업무 압박과 강도가 올라갔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텐션이 높은 환경 속에서 두뇌 속 메인 장치의 작동으로 업무 집중도도 높아진 상태인데, 업무 외적 요소(집안일이나 손님의 방문 등)로 집중이 분산되게 되면 다시 책상 앞에 앉기가 어려웠습니다. 개인 시간 관리 측면에서도 압박감이 높아진 것이지요.
세 번째 단점은 고립감과 정서적 소모입니다.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과의 가벼운 이야기들은 정서적으로 큰 보탬이 됩니다. 가끔은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구요. 하지만 재택근무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물론 불필요한 인간관계와 소문 속에 휩쓸릴 필요가 없으니 재택근무 초반에는 집중력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같은 맥락을 가진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감이 없기 때문에 활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고립감과 정신적 소진으로 이어집니다.
뭐랄까, 고독한 프리랜서 같은 느낌인데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괜히 소설가의 고충을 토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것을 반복합니다.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실제로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도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나는 그런 쪽의 작업에 관해서는 상당히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
그럼 재택근무를 하게 된(혹은 하게 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요?
1) 먼저 마인드셋 측면에서는 재택근무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점을 길게 먼저 말씀드린 것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재택근무라고 하면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집 앞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우아하게 일하며 가끔 고양이와 놀아주는 것..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일의 성과는 물론 자기 관리에 대한 부담이 훨씬 높아지는 방식임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2) 그다음에 할 일은 바로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신경을 분산시킬 요소가 사무실보다 다분한 재택근무의 특성상 자기가 오롯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 그리고 방법을 찾아내서 습관화해야 합니다.
일단 재택근무를 시작하면 몰랐던 자기 업무 스타일에 대해 깨닫게 될 겁니다. 사무실에서 능동적으로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서는 의외로 일에 돌입하기가 어렵더라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오전에 일찍 업무를 시작하고 저녁에 개인 일을 보는 게 효율적인지, 아니면 반대로 낮에는 개인 스케줄을 마치고 저녁부터 일하는 게 적절한지도 알게 됩니다.
재택근무와 나의 합을 맞춰보는 이런 시도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게 맞는 환경이 조성되고, 이를 반복하면 효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죠. 게다가 일과 사생활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재택근무의 특성상 이렇게 합을 맞추고 루틴을 만드는 시도는 나의 워라밸 측면에서도 더욱 중요합니다.
3) 마지막으로는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조직 측면에서 고려할 점입니다.
지금이야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재택근무를 도입하고자 고민하는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의 성향과 일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시행해야 합니다.
구성원의 경우 자기 통제력이 좋고 훈련도가 높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조직 측면에서는 업무 분장이 명확하며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비중이 높은 조직이 재택근무 도입에 적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새로 세팅된 조직이거나, 이해관계자 간 협업과 교감이 성과보다 더 중요한 업무의 경우에는 불리한 방식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에는 직원은 반드시 사무실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관리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근태'에 민감한 상사들도 많구요. 사람의 성실성과 성과를 근태와 단순 시간으로만 평가하는 문화가 문제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라, 코로나로 촉발될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괜히 낯설기도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체계란 존재하지 않으니, 코로나 사태를 슬기롭게 넘긴 후에도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과를 높여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 이 글을 보시는 모두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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