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거리두기, 그리고 신뢰
코로나 초기부터 나오던 이야기입니다만, 코로나가 창궐하던 코어로는 신천지, 콜센터, (성소수자) 클럽, 다단계, 방문판매, 물류센터, 극우 종교단체 등이 떠오릅니다.
지역적으로는 강북, 성북, 노원, 강서, 구로 등 서울 내에서 노동집약적 사업체가 몰려있거나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왔죠.
변호사나 의사, 대기업 사무직 등 비교적 교육 수준이나 소득이 높은 사람들과 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강남, 잠실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해외에서 감염되어 돌아온 경우가 아니고서는 확진자가 그리 많이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 가리는 것도 아닐텐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코로나가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해 핀포인트가 되는 이유는 종교도, 교육이나 소득,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과 물리적으로 가깝게 지내야하는 직업/지역/모임이 어디인가일 것입니다.
물론 콜센터, 물류센터 등은 투자비 절감을 위해 공간에 최소 비용만 투입하는 것이니 불가피합니다. 그럼 그 이외의 케이스는 왜 서로 자주 모이고 가깝게 붙어 지낼까요?
가장 유력한 설명은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데이빗 데스티노(David DeSteno) 교수가 쓴 '신뢰의 법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데스티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권력이 많고 부유할수록 타인을 신뢰할 이유가 없으니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난하고 지위가 낮을수록 다른 사람을 믿고 협력해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데,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신호를 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을수록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구조화된 강제 이행 도구 - 법, 계약, 공권력 - 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타인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제공하게 만들려면 계약서를 쓰고, 그것을 이행하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말 그대로 '법대로'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손에 쥔 것이 없는 경우에는 이렇게 강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의에서 공인된 강제 이행 도구들은 대부분 대가를 지불해야 이용이 가능하거든요. 쉽게 말해, 값비싼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기가 부담되는 거죠.
대가를 지불할 금전적 여유나 사회적 지위가 없는 사람이 타인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게 만들고 싶을 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상대방과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딱히 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니'라고 말하려면 서로 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심정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물리적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악수도 하고, 마주 앉아서 밥도 먹고 같이 술도 마시고 어깨동무도 하는 것이지요.
물리적 거리의 축소는 가끔 심리적 긴장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친밀감의 표시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서로 가까워지면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특히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신뢰도를 급격하게 상승시킵니다. 중세 유럽이나 몽골 유목민의 관습에 따르면 칼을 가지고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서로 죽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직 친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적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럼 부자도, 권력자도 아닌 일반인은 그냥 그렇게 살다가 코로나에 걸리라는 뜻이냐?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이 시국에 나의 건강을 지키고, 더 근본적으로는 일상이나 직장생활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에 매몰되거나 동일시해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신천지, 태극기부대입니다.) 아래와 같이 몇 가지 노력을 해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 타인과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해지자.
거리를 걸을 때 누군가 마주 오고 있으면 옆으로 약간 피하거나, 아니면 어깨를 조금 움츠리는 등의 행동을 해봅시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심리적으로도 적당히 떨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답니다.
2. 타인과 심리적 거리를 두자.
물리적 거리를 둔 후에는 심리적으로도 좀 떨어져봅시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살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을 살아갑니다. 너무 야박한거 아닌가, 외롭지 않을까 고민도 되겠습니다만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는 모두 혼자입니다.
3.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보자.
누군가 나에게 카톡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인사를 하지 않았다, 선물을 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봅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을 삽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나에게도 가족이나 연인처럼 중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잖아요.
4. 대신 나 자신과 가까워지자.
혼자 있을 때 외롭거나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내가 관심을 쏟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신과의 대화나 목사님과의 상담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과 대화를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깥에 있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고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과 독서입니다.
내가 건강하고 밝게 인생을 잘 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주변에는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닐지라도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충분히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지 않으면, 나를 지탱하는 에너지가 부족하면 타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만나면서 물리적 거리를 좁혀야 하죠. 그렇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위하는 마음이 진심일지, 정말로 내게 도움을 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관계도 건강해집니다. 독립적이면서도 상대를 도울 줄 아는 사람들이 만나면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가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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