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porate Venturing과 기업 성장 chapter 1.
주력하고 있는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그 속에서 몇몇 회사가 경쟁하는 안정적인 구조가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슬슬 매출 성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니 좋은 것 아닌가 싶겠지만 시장 성장이 느려지는 상태에서 매년 비슷한 수준의 매출이 반복되면 자기자본수익률이 낮아질뿐더러 근본적으로는 기업의 활력과 경쟁력이 저하됩니다. 조직이 관료화되고, 젊은 직원들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게다가 새로운 아이디어에 가득 찬 능력 있는 직원들보다는 그저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됩니다. 사기업인데도 공기업같이 되어버리죠. 공기업이야 법률 등으로 그 독점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급격한 시장의 변화에 직면할 일이 없지만 관료화된 민간 기업은 변화의 파도를 맞게 되는 순간 무너집니다.
메인프레임 시대 속 전 세계 최고의 기술회사이던 IBM은 PC-Unix와 인터넷의 등장 이후 존재감이 옅어졌고 필름 카메라의 최강자이던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등장 이후 파산해버렸습니다. 최근에는 백 년 넘게 과점 체제를 유지해왔던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기동력과 자율주행을 앞세운 테슬라의 공격에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19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업계, 특히 비대한 관료주의를 가진 대형 자동차 업체들 상당수는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예정된 몰락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탐색합니다. IMF 전후부터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의 성장 전략은 두 종류의 프레임웍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첫 번째는 제품 경쟁력과 시장 이해를 기준으로 잘하는 물건, 혹은 잘 알고 있는 시장을 중요시하라는 Ansoff Matrix, 그리고 두 번째는 시장의 성장률과 시장 점유율의 관계 속에서 성장 방향을 찾는 BCG Matrix가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프레임웍이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팔 수 없거나, 혹은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시장이 아닌 곳에 진출하는 것은 금물이다."
즉, 회사가 가진 노하우나 핵심 경쟁력 등 유무형 자산을 철저하게 레버리지 해야 새로운 시장에서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시각인 것이고, 다른 말로는 레버리지가 불가능한 시장은 그 자체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쉽사리 진출하지는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식품업체가 매출액이 크다고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삼성전자가 이커머스 사업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매우 합리적인 판단 기준이고 실제 우리나라 기업들이 IMF를 딛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해 준 논리입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것과 연관된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줬으니까요.
사실 IMF 이전에는 회장님이 하고 싶은 사업이나, 남들이 수익을 내고 있는 사업이라면 일단 덤벼들었던 것이 우리 기업들이었습니다면 Ansoff와 BCG matrix가 이런 오류를 줄이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죠.
하지만 온라인의 대두, 특히 모바일과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시장을 흔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가지 프레임웍만 가지고는 대응하기가 어려운 상황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90년대 말 인터넷 비즈니스나 2000년대 말 스마트폰의 등장은 기업의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고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등장 그 자체로 경쟁 양태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죠. 물론 고객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대단한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을 돌이켜보자면,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보완재거나 오프라인에 비해 품질과 신뢰도가 낮은 물건이 거래되는 공간에 불과했습니다. 단적으로 2010년 이전에 명품들은 온라인 웹사이트 조차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자동차나 가구 같은 내구재들도 온라인 구매는 거의 없었고 코스트코 역시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이런 변화는 온라인 등장 후 거의 한 세대가 흐른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지금 20대인 90년대 생에게 인터넷은 수도나 전기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히 존재하던 인프라입니다. 그리고 2000년대 생에게는 모바일 서비스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죠. 소위 Digital native/Mobile native가 등장한 것이고 이들은 모든 것을 인터넷과 모바일로 해결합니다. 한 때 보세나 짝퉁을 팔던 온라인 쇼핑몰은 어느덧 오프라인보다 거대해졌고 지마켓이나 쿠팡의 거래규모는 이마트와 롯데마트를 넘어서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아마존 때문에 줄줄이 폐업하고 있습니다.
온라인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음식점들 또한 전체 매출의 20% 이상이 배달앱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는 영상을 찾아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심지어 AI를 기반으로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패션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40~50대에게는 SF 소설 속에서나 나오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코로나 19가 터졌습니다. 코로나의 전염성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영위했던 오프라인 활동을 제약하고 있죠. 그렇지 않아도 강세이던 온라인 비즈니스가 이제는 완전히 대세이자 주력이 되어버렸고, 오프라인은 어쩔 수 없이 버티거나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코로나 이후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회사들이 시가총액 최상위에 올라서고 외국에서도 아마존, 애플이 석유 기업들을 밀어내고 있으며 테슬라는 폭스바겐과 도요타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온라인과 AI 등 디지털 기술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계속 언급되었지만 코로나 19는 이 모든 논의를 단숨에 현실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이런 급격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기업들은 온라인만을 주력으로 하거나, 회사의 핵심 경쟁력에 신기술을 적용한 기업들입니다. 꼭 시가총액 최상위가 아니더라도 최근에 주목받고 각광받는 기업들은 모두 스타트업들이고 반대로 무너져가는 기업들은 두산이나 니만 마커스와 같은 소위 '100년 기업'들이죠. 우아한 형제들이 4조 7천억 원에 M&A 되고 ZOOM의 주가가 미친 듯이 상승하는 이 시점에 두산그룹은 사실상 해체 상태에 놓이고 니만 마커스와 JC페니가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온라인의 오프라인 침공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이 공격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이 신생 기술 기업을 의미하는 스타트업입니다.
기존 기업이라고 해도 온라인과 코로나 19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메모리를 만도는 삼성전자는 확대된 재택근무와 스타트업의 성장으로 인해 오히려 메모리를 더 많이 판매하고 있고, 통신회사들도 사상 유례없는 데이터 트래픽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매출 성장은 매년 70~80% 성장하고 있는 쿠팡이나 우아한 형제들 같은 온라인 스타트업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조금 오래된 기업과 비교해도 역시 낮은 수준입니다. 이들은 리스크가 높지만 그만큼 투자자들에게 고속성장을 가져다주고 그래서 더 높은 ROE(자기자본수익)를 가져다줄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확합니다.
성장성에서 밀린다는 것은 단순히 매출이나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과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인재 전쟁에서 밀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자원이 많고 단단한 회사라고 해도 이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소수의 핵심인재입니다. 그래서 핵심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죠. 그동안 취준생들이 선호하는 기업은 삼성전자, SK 같은 '전통적인 대기업'이었지만 올해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나란히 1, 2위에 올랐습니다. 취업시장의 무게중심 또한 차츰 기술기업, 온라인 기업, 스타트업에 쏠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최근의 변화들, 구체적으로는 급격한 온라인화, 작은 스타트업이 성장성과 미래 비전에서 기존 기업을 압도하는 현상, 젊은 인재들이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현상은 기존 기업들에게는 심각한 위기상황입니다. 국내에서 최고의 존재감을 자랑하던 대기업들이 주식시장과 취업시장에서 모두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고, 대기업만은 못해도 꽤나 좋은 회사라고 주장했던 중견기업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수준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어들고 불확실성만 남았다는 점에서는 기존 기업들에게는 IMF나 금융위기와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뜻이 됩니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성장 위기가 오면 Ansoff와 BCG Matrix 논리에 따라 대응했습니다. R&D를 거쳐 브라운관이 LCD가 되었고 다시 OLED가 되었습니다. 한국 제품과 사업 모델을 그대로 들고 중국, 동남아에 진출했고 미국과 유럽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조선소들은 더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선박을 제조하는데 도전했고, 통신사들은 자사 네트워크망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콘텐츠와 OTT에 투자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의 개선과 연계 확장(Related Expansion) 전략은 2010년대 초반까지는 성공적이었지만, 이후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의 성장과 IT기술의 득세가 분명해지면서 그 성과는 급격하게 퇴화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 기업들이 덜컥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거나 온라인에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마음먹었다고 해도 실행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오프라인 유통업의 최강자인 롯데그룹의 온라인 커머스 강화는 벌써 10여 년이 넘는 해묵은 숙제이고 최근 '롯데온'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오프라인의 색채를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기존 오프라인 사업과의 충돌(Carnivalization)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파산위기에 몰려 대대적으로 오프라인을 정리하고 온라인으로 옮겨갔던 미국 베스트바이 또한 매출의 추가적 잠식은 막았지만 아마존이나 온라인 스타트업과의 경쟁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안전한 연계 확장 전략은 시장에서 유효하지 않습니다. 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예상할 수 없는 경쟁자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전사적 명운을 걸고 온라인화를 추구하기에는 기존에 투자한 자산이 너무 많고, 새로운 시장과 기술에 대한 기업 내부의 이해도 또한 너무 낮습니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기업들이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Corporate Venturing(이하 CV)입니다. CV란 기업 내부 자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외부의 작지만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혁신을 도모하는 방법론의 의미합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Ansoff나 BCG Matrix가 의미하는 Comfort zone을 벗어나서 공격적으로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라는 명제입니다. 다만 무작정 새로운 곳에 진출할 수는 없으니, 시장과 기술에 경쟁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찾아서 첨병으로 활용하라는 전략입니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협업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CV에서 의미하는 '협업'이란 기존의 납품 - 구매 관계는 아닙니다. 기존에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맺었던 이런 관계는 Value chain상 관계일 뿐이며, 시장과 기업문화 관점에서의 변화는 아니죠.
CV는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 시장을 찾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기업 내부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과정을 의미하며, 기업 내부에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수많은 보유 자원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기존 사업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거나, 자사의 위상 때문에 고려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전략을 외부 스타트업을 활용해 시장에서 테스트하고 가능성이 보인다면 교두보를 가진 상태에서 급속하게 진입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마치 보병 사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소수 정예의 특수부대를 이용해 적진을 정찰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또한 특수부대원들의 전술능력과 무기체계, 투쟁심이 일반 병사들의 본보기가 되고 사단 훈련 및 전술 운영에 있어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것처럼 스타트업의 문화와 사업 전략을 배워 기업 내부의 혁신 원동력을 삼는 것 역시 CV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V는 기업이 과거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신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내외부 자원 가릴 것 없이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주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손발을 맞춰보지 않았던 낯선 업체들과 일해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히 높은 전략이며, 스타트업 자체가 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협력 역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 전략 실행 측면에서도 난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Comfort zone에 머물며 성장을 추구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모바일이 불을 당겼고, 코로나 19가 기름을 부었죠.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CV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실행 측면에서의 고민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 글부터는 CV 전략의 도입 배경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과 함께, CV가 어떻게 태동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기업의 CV 필요 역량 향상을 위해 패스파인더넷이 제공하는 진단과 프로그램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bit.ly/패스파인더넷_offering
2. 패스파인더넷 홈페이지/페이스북에서는 교육 후기 등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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