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제면 어떡하지?
‘내 사무실의 싸이코’ 글을 쓰면서 상사나 동료 등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제로 다뤘습니다만, 이번에는 '나'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장점만 가득한 완벽한 성격은 있을 수가 없고, 남 욕하기 바쁜 우리도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욕을 먹는 사람인게 인생이죠. 그리고 사람의 성격은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단점은 아무리 마음을 고쳐 먹어도 단점으로 남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자각과 노력을 통해 ‘성숙’해질 수는 있죠. 단점으로 인한 관계의 상처는 조금씩 줄여나가고, 장점을 잘 키워서 스스로는 조금 더 편안해지고, 타인들에게 덜 짜증나는 사람이 되는 길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불안감도 너무 커요" 라고 주변에 대해 자주 말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이런 분들은 아래와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이나 인정을 원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막상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면 왠지 자기를 욕하는 것 같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불안이나 걱정이 매우 많다
혹시 내가 이런 사람은 아닐지 냉정히 판단해보기 위해, 이런 유형들의 특징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모임에 갈 때 모임 자체에 대한 기대나 만날 사람에 대한 기대보다 뭘 입고 갈까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경우입니다. 패션에 신경쓰는 분들이야 그럴 수 있지만, 이 유형의 문제는 패션만 그런게 아니라는거죠.
회의 때는 어떻게든 튀는 발언 해야 하고 나보다 다른 사람이 주목받는게 너무 싫고, 나를 인정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질투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경쟁자의 실적이 잘나오면 어떻게 해서든 앞질러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성향입니다.
핵심은 타인이 나를 봐주길, 나를 인정해주길, ‘남보다 나를' 더 인정해주길 바란다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인정 욕구는 있죠. 다만 정도가 좀 많이 심합니다. 명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나와 같이 있는 사람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초조하고 불안해지고 심지어 분노도 밀려옵니다.
과다한 인정 욕구는 과다한 불안과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그리고 불안은 감정의 기복을 낳죠. 여기서 기복은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았다가 우울해지거나,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는 걸 말합니다. 재밌는 건 불안과 분노 모두 ‘타인의 인정’과 관련된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겁니다.
보통은 다른 사람이 무례하거나, 혹은 처우나 상황이 불공평하거나, 합의된 사항과 말이 달라지면 사람들이 분노하게 되죠. 불안은 대체로 미래에 기대하는 일이 제대로 안풀릴까에 대한 걱정이구요. 하지만 불안과 분노가 ‘저 놈이 나를 무시했어’, ‘저 놈들이 나를 뒤에서 욕한 것 같아’ 또는 ‘내가 능력없다고 깔보는 것 같아’ 혹은 ‘저 사람이 내게 더 이상 관심이 없나봐’ 처럼 [타인의 마음에 대한 나의 부정적 짐작]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흔하다면 자기가 이 부류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자꾸 ‘무관심’해진 타인의 태도와 말, 혹은 나를 ‘무시’했던 일만 머리속에 계속 떠오릅니다. (실제 그 사람이 무시했거나 무관심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게 그렇게 경쟁이나 공격 욕구를 느끼지도 않고 관심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냥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결과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타인의 태도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러 나가죠. 그리고 나의 이런 감정을, 내가 겪은 부당한 대우를, 내가 느낀 서러움을 구구절절 토해내죠.
스스로 잘 생각해보세요. 동료들과의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내 얘기가 차지하는 지분을 말이죠. 오늘 같이 점심 먹었던 동료들 각자의 고민이나 혹은 일상 이야기가 세세하게 기억이 나나요? 친구랑 하루 종일 떠들고 왔는데 친구가 한 이야기의 디테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너무 자기 위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닌지 잘 생각해보세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베프입니다. 물론 그 베프와는 이제 겨우 두어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면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인생 최고의 베프를 이제사 만나다니!
그런데 다시 몇번 더 만나고 나니 이제 베프가 나를 더 이상 신경쓰지 않습니다. 내가 안보는 곳에서 나를 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나를 경쟁자로 보는 것 같아요. 순해보였던 그 친구 얼굴이 이제는 얄밉기 그지없습니다.
혹시 주변에 극소수의 베프와 다수의 적만 존재하지 않나요? 그 베프가 자주 바뀌지는 않나요? 혹은 다른 친구를 찾아봐도 결국 베프와 나 둘만 붙어다닌다면 잘 생각해보세요. 주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적으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들은 별 관심없고 나 혼자서 적으로 여기고 있는지 말이죠.
건강한 조직이라면 역량과 노력을 통해 실적을 이끌어내고, 그걸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게 회사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건 개인 단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회사에서 여러분이 스스로를 생각할 때 역량과 노력보다는 윗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실적을 만들고, 동료들을 챙기기보다는 버리고 이용하면서 승진하고 있는 것 아닌지 아주 가끔은 뒤돌아보세요.
회사에서 윗사람 눈에 드는 것도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윗사람 눈에 드는 것만’ 가지고 경쟁을 하려고 하면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해 보세요. 내가 윗사람과의 좋은 관계 외에 어떤 경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를요. 실무지식, 학습능력, 다양한 경험, 산업과 직무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 직원들에 대한 성장 촉진 등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죠. 학위나 스펙이나 경력처럼 겉에 보이는 것 말고 말이죠.
모임을 하는 것도 같습니다. 모임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따뜻한 지지를 나누고, 재밌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즐거움을 갖는 것이 목적이지 내 현재의 모습을 과시하거나, 내게 있었던 문제를 하소연하기 위한 것이 아닌데, 스스로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세요.
공부를 열심히, 같은 반의 친구보다 더 잘하려고 죽어라고 했지만 막상 합격한 대학과 과는 뭔가 좀 아쉬웠고, 다시 그곳에서 열심히 했지만 뭔가 계속 타이틀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고 있나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혹시 학위 수집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혹은 회사에서 일 자체의 매력보다는 그 일의 ‘직함’이 더 끌려서 그 일을 선택하고, 좀 더 그럴싸한 회사로의 이직을 계속 생각하시나요?
겉보기 등급과 명성이 중요하고, 이력서에 한 줄이 실제 내 업무 능력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면 이 부류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보다 잘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내거나, 뭔가 없던 곳에서 그럴싸한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라는 느낌도 많이 드신다면 더더욱 이 부류에 해당됩니다.
그래도 장점은 있습니다.
모든 성격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나쁘기만한 성격은 없죠.
이렇게 불만과 불안에 가득차 있는 분들에게도 장점이 있습니다.
주변의 관심을 갈구하는 관종(...)이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한 적이 아주 많아서, 경험에서 피어나는 ‘진행 능력’이 생깁니다. 회의나 모임에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만한 주제를 던지고 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끌고 갈수도 있습니다. 딱 하나, “내가 그 관심을 조금 안받아도 오늘은 괜찮다”는 생각만 하시면요.
사춘기 때부터 남앞에 나섰고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내용이지만 그걸 요약해서 여러 명에게 전달하는데는 굉장한 능력자입니다. 보통은 남 앞에 서기를 부담스러워하고 발표까지 하는 것은 더더욱 꺼리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 의미에서는 이 유형은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회사에서는 가끔 상사들끼리 의견이 충돌하거나, 고객과의 갈등이 치솟는 상황 등이 생깁니다. 부하직원들중에서 중재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격화된 순간 이걸 중화시키는 능력은 여러분을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중요한 고객이 업무와 관련해서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할 때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건 이 유형의 장기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일은 곧잘 합니다. 가령 행사의 이름을 정한다던지, 회사 분위기 개선을 위한 색다른 이벤트라던지, 재밌는 디자인 같은 것들에는 남보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일을 어릴 때부터 해온 덕분이죠.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이 유형의 사람들이 가진 장점은 발표력 및 전달능력,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능력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떠올리기 입니다.
그리고 단점은 이 장점의 뒷면, 즉 불안감이 높아서 정서기복이 심하고, 나를 과도하게 중심에 놓고, 타인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죠.
장점은 계속 키워나가고, 단점은 스스로 이런 단점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를 깨달아가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타인과 대화를 하세요, 본인 이야기만 하지 마시고.
외향성이 강하고, 관종이신 분들에게는 무리한 항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남들과 대화를 나누세요. 자기 이야기만 하지 마시구요.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대화는 이 한 마디로 시작됩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구나, 좋은 생각인데?” 같은 식으로요. 단 10분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시면서 내 이야기는 하지 말아보세요. 정말 쉽지 않겠지만 이것도 훈련하면 조금씩 개선됩니다.
항상 사람과 있을 때는 내 이야기 3, 상대의 이야기 7 이라고 생각하시면 삶이 편해지고 주변에 믿을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상대 이야기 7이라고 해서 내가 물어본 질문에 답하는 걸 7로 계산하지 마세요. 그 사람의 삶과 생각에 대한 자발적 이야기가 7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작은 몸짓과 말투 하나하나가 신경쓰일텐데요, 상대방이 나의 남자친구/여자친구가 아니라면 의미없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관심없고, 공격할 생각도 없고, 여러분의 말에도 무신경합니다. 반응을 잘 보여주는 사람은 고마운 사람이고, 그 외엔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하지 마시구요. 별 문제 없습니다.
당신 혼자 잘나서 승진한게 아닙니다. 타인을 꼭 챙기세요.
나서고 보여주기 좋아고, 남이 주위의 관심을 뺏어가는게 싫어서 어떻게든 죽자살자 일해서 승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주변에 상처를 많이 줍니다. 타인을 이용해먹기만 하고 신경꺼버리기도 하죠. 그래서 승진은 곧잘 하고 윗사람의 인정도 받지만, 정작 주변에 친구가 별로 없고, 나를 따르는 직원도 별로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고 싶은 관심의 일부라도 나누어주세요. 여러분이 작가나 장인 혹은 1인개발자 처럼 혼자 일하시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러분의 승진은 누군가가 옆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결과입니다. 결과를 나누시고, 기회와 관심도 나누세요. 정말 쉽지 않겠지만, 혼자 잘나서 승진하고 관심을 받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꼭 하세요. 주변에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 하나 없는 고독한 '높으신 분'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돌려서 말하지 마시고, 불만이 있으면 얼굴을 보고 정확히 이야기하세요.
여러분은 타인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고 또 나보다 관심을 많이 받거나 능력이 좋은 사람을 질투합니다. 사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특별한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사실에 심하게 분노하거나, 그 대상자에게 돌려서 공격하는 (이른바 '수동공격' - 관련 글 "그냥 시원하게 멱살 한 번 잡으십시다") 행태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쉽거나 혹은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괜히 빙빙 돌려서 공격하지 마시고, 당당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하세요. 정면에서 얼굴보고 이야기하면 10분이면 풀릴 일이 여러분처럼 수동공격을 남발하면 평생가도 안풀립니다. 무섭고 불안해서 그렇게 못하는 것일테지만, 명확하고, 짧고, 간단명료하게 불만사항을 전달하세요.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지적에 대해 발끈할 정도로 미성숙하지 않습니다.
경계인은 무섭겠지만, 자유롭습니다.경험해 보세요.
주목을 못 받으면 불안하긴 하실겁니다. 하지만 역으로 주변의 관심이나 인정에서 벗어나있으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어깨를 누르는 짐을 벗어던져야 사람이 숨을 편하게 쉬게 되죠. 여러분의 짐이 바로 ‘관심과 인정’입니다. 이 무거운 짐을 지면서 마음도 편안해지려고 하니, 이 짐 때문에 생겨난 화와 짜증을 자꾸 타인에게 쏘는 겁니다.
주변인의 삶은 외롭고 쓸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그만큼 편안하기도 합니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돌보는 연습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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