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el Jan 08. 2021

정부 스타트업 지원사업에 대한 생각

여러분의 세금이 터지고 있습니다.

야구에서 중요한 통계 중 하나가 바로 '희생 번트에 의한 득점 성공률'입니다. 


희생번트는 원아웃을 헌납 하더라도 이미 나가 있는 주자를 홈에 더 가깝게 보내는 작전입니다. 경기 후반에 반드시 점수를 내야만 할 때 많이 선택하는 전략이죠. 


언뜻 보면 합리적이고 성공적인 작전처럼 보이는 희생번트지만 알고 보면 단순 강공보다 득점 확률은 2% 정도 낮다고 합니다. 승부가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희생번트를 지시하는 게 엄밀히 말하면 좋은 전략은 아니라는 뜻이죠. 


하지만 소위 '스몰볼'을 표방하는 팀들, 특히 우리나라나 일본 야구팀들은 희생번트 작전을 즐겨 씁니다. 우직하게 배트를 휘둘렀다가 병살이 나오면 감독이 욕을 많이 먹기 때문이죠. 그냥 안전하게 아웃 하나만 손해 보는 것입니다. 



1. 정부의 행동 편향


이처럼 아무것도 안하는게 더 좋은 상황에서 괜히 작전을 쓰는 태도를 일컬어 '행동 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냥 타자한테 맡겨두면 득점 확률이 최소한 2%는 더 높을 텐데도 불구하고 굳이 희생번트를 지시하고 열심히 달리는 셈이죠. 


행동 편향에 관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를 멀리 보내 놓으면 관리도 안되고 나쁜 물이 들 것을 알면서도 멀리로 유학 보내는 부모가 그렇고, 불효자가 부모님 장례식에는 정성을 쏟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괜히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야 내가 욕을 덜 먹기 때문이죠.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또한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청장년 취업률이 워낙 안 좋고, 멍하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스타트업 지원 예산을 증대시키는 취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 지원금은 그저 국민 세금을 준공무원 - 정부 지원금이 결국 스타트업 직원 월급으로 흘러가기도 하니까 - 직원은 결국 준공무원 같은 위치 - 40만 명에게 2,000만 원씩 나눠주는 정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창업을 가로막는 여러 규제를 조율하거나, 창업으로 인해 벌어질 혁신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혹은 창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을 조성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결국 행동 편향 때문이죠. 그동안 정부가 공공지원이라는 명목으로 해왔던 행태와도 동일하며, 정책 결정자들도 돈 쥐고 흔드는 쾌감도 있고 무엇보다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금보다 민간 투자가 스타트업 양육&성공에 더욱 효율적이란 사실을요.) 이런 맥락에서는 굳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고 진정한 지원이 무엇일까를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죠. 



2. 스타트업에 불러온 효과


게다가 이 지원금들은 정부의 행동 편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일정 키워드에 맞춰서 스타트업의 실제 비즈니스와는 무관한 것들을 요구하고, 그 결과 멀쩡한 스타트업의 방향성이 흐트러지거나 헛바람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식품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금을 타기 위해 AR 기술을 내세우는가 하면, 옷도 제대로 못 만드는 의류업체가 빅데이터를 모아서 패션 AI를 개발하겠다고 지원금 받는 경우도 봤습니다. 둘 다 비즈니스 본질과는 한참은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주목하는 키워드 '4차 산업 혁명'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1억 원에 가까운 세금이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6개월 뒤 수행 보고서 외에는 아웃풋이 나온 게 없었죠. 그냥 정부 돈으로 스타트업 직원들 월급만 준 셈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통장에 돈이 찍히게 되면 '정부가 인정한 유망한 회사(의 대표)다'와 같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지원금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들 다 타낸다니까 그거 안 찾아먹으면 바보 취급하는 문화도 생겨납니다. 


불안해서 그냥 하는 행동 편향이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추가적인 사이드 이펙트까지 만들어내는 셈인데.. 언제까지 이럴지, 수 많은 스타트업과 하루하루 직접 대면하는 입장에선 안타깝기만 합니다. 



패스파인더넷은 기업 성장 전략 전문 Advisory입니다.


Seed ~ Series A 까지의 초기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기업의 Corporate Venturing 전략(사내 스타트업 프로그램 설계 및 운영, 오픈 이노베이션 등)에 대해 조언드리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성장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고민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Corporate Venturing 성장 전략 offering' 확인하기

▶ 패스파인더넷 레퍼런스 확인하기

▶ 문의 : jskalex@pathfindernet.co.kr  

매거진의 이전글 채용에 관한 스타트업 대표의 네 가지 착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