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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Feb 27. 2021

2020년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2020년과 개발자들의 몸값


역사가 기억하는 2020년은 역병의 해일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추가적인 의미는 긍정적인 시각에서 제2의 IMF 라는 점이다. 


2020년이 긍정적이라니 돌맞을 소리고, 제2의 IMF 가 긍정적이라니 돌 두번 맞을 일이긴 할텐데, 최소한 경영 분야에서는 분명 메시지가 분명했던 해라고 생각이 된다. 


온 국민이 고생했던 IMF 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정경유착'이라는 전근대적인 관행이 무너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망을 만들어내 지금 재계의 관행을 바꿀 네이버와 카카오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의미도 있다. 


2020년이 긍정적 의미에서 제 2의 IMF 라고 생각하는 것은 드디어 'Size does matter' 라는 시각에 균열을 만든 것이라 믿는다. 기존에 존재했고, 커다랗다는 이유로 우리를 짓눌렀던 권위주의로부터 드디어 탈피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우리보다 훨씬 거대한 경제를 가진 미국과 유럽과 일본은 혼란과 무책임으로, 중국은 무한 이기주의로 온통 부정적 뉴스를 쏟아낼 때 규모가 훨씬 작지만 효율적인 국가와 책임감있는 국민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를 배웠다. 변방이라고 무시되곤 했던 영화가 아카데미를 수상했고, 빌보드 1위를 했다. 비판의 여지도 많지만 국내에서 성장한 스타트업이 5조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엑시트를 했고, 다시 재벌의 거대한 품아귀 속에서 성장하지 않은 여러 스타트업들이 몇 조원대의 엑시트 또는 IPO를 성공시켰다. 


IMF 가 정치권력이라고 해도 시장을 이길 수 없음을 알려줬다면, 작년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엄청난 노력이 결합하면 기존의 거대한 경제 권력과 기존의 권위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증명해낸 시간인 셈이다. 


이 여파는 이제 다시금 변화를 추동할텐데, 최근 눈에 띄는 것은 개발자들의 몸값이다. 기존에 주목받고 성공을 향해 가던 사람들은 권력자의 주변, 기업에서는 CEO의 주변에 있던 업무들이다. 변호사가 그렇고, 대기업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하던 부서들이 그랬다.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투자회사들이나 전략컨설팅 등이 연봉 최상위 직무들이었다. (물론 의사 등의 전문직, 대형 제조업체의 몇몇 숙련공들이 높은 몸값을 받기는 했지만, 이들은 소수이고, 앞으로도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개발자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모두 필요로한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범용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CEO 와의 친분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술적인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전문직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들은 수백명이 모여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할 때도 가치 창출이 가능하지만, 단 한명이 어플 등을 통해 수십억원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결국 무언가를 갈아 넣어서 그 투입 대비 보다 높은 리턴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IMF 이전에 그 무언가는 '권력과의 연줄'이었고, 접대였다. 요즘 표현으로 ROAS 높게 나올 권력을 잡으면 되는 것. 


그 이후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는 '사람'과 '자본'의 힘이었다. 시설과 설비를 보다 비싸고 큰 것을 투입하고, 다시 그 운영에 사람을 갈아넣으면 리턴이 돌아왔다. 


2020년 이후의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자본 투하의 규모 자체가 변화를 추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속성은 투하 자본의 규모가 아니라 고객에게 얼마나 충격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침투력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이 경향을 증명하는 것이 개발자의 몸값이다. 대한민국 유사 이래 한 직군의 몸값이 이렇게 불과 몇 달 사이 몇 천만원씩 올라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병에 시달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배달노동자가 되어 길거리를 돌아다녀야 했던 2020년은 어떻게 기억되어도 고통스러운 해인 건 분명하다. 


다만 권력도 해체되고, 권위도 해체되고, 기존에 보유한 규모의 힘도 해체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시대라고 해도 자본은 여전히 사람을 착취하고, 성공하는 사람은 더 크게 성공하고 실패하는 사람은 더 처절하게 실패하는 시대를 피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예전처럼 연줄 등 전근대적인 기준도, 권위와 규모 등 기존에 보유한 힘도 아닌 새로운 전복의 도구가 허락되는 시대가 열린다는 점만은 긍정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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