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el Mar 21. 2021

의미와 목표를 찾고,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는 거짓말

일과 자기유능감의 관계

일, 그리고 성공에 관련해서 우리가 늘 듣고 사는 진리와 같은 말들이 많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세요.

삶 속에서 일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성공하려면 목표를 잘 세우고 거기 매진해야 합니다.

성공한 내 모습을 떠올리며 노력해보세요.

성장과 즐거움은 일에 매진하는 동기가 됩니다. 

업무에 대해 가설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고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커리어 목표를 세운 후 성장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시키는 일만 해서는 안된다', 혹은 '기계적으로 일을 반복할수록 성공은 멀어진다'는 표현들이 있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만 해서는 실력이 늘 리가 없고,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곧 지쳐버리겠죠. 


그런데 사실 이런 말들은 우리를 몇 가지 함정에 빠지게 만듭니다. 


목표나 의미, 즐거움이 없는 일.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은 괴롭고, 성공에 다다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창적인 의미나 거창한 목표 없이 일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명확한 가설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을 하찮게 보게 만듭니다. 


목표-의미-가설 접근법은 단기간 내 특정 스킬을 훈련하거나 특정한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결승점이 있어야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아내기 쉬우니까요. 


위인전을 보면 이런 시각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왕과 장군들은 백성을 구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목표를 일찌감치 세우고 의지를 불태우며 끝내 꿈을 이루는 것처럼 그려지죠. 


간단히 몇 가지만 생각해봅시다. 


PC, 아이팟, 아이폰으로 세상을 적어도 세 번을 뒤집어 놓은 스티브 잡스는 어땠을까요? 워즈니악과 최초로 만든 제품을 팔러 다닐 때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을까요? 아이폰을 출시할 때 '앞으로 3년 내에 1억 대를 팔거야!' 같은 생각을 했을까요?

주커버그가 웹으로 기숙사 친구들의 인명록을 만들었을 때, 혁신적인 SNS 서비스를 제공하고 200조 이상의 회사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했었을까요?

구글은 어땠을까요? 전 세계의 웹과 모바일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큰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첫 스텝으로 검색 엔진부터 전략적으로 구축했던 것일까요?


아마도 이후에 나온 그들의 성공 에세이나 위인전같은 콘텐츠에서는 그렇게 말할 겁니다. 그게 더 설명하기 쉽고 또 멋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누구도 미래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미래를 맞이하고 싶다는 희망은 있겠지만요. 그렇지만 이런 희망을 넘어서 자기가 성공한 모습을 혼자서 아주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현재 생활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강박에 가까운 태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일의 의미나 즐거움, 내가 원하는 나만의 일이라는 개념들도 환상에 불과합니다.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내가 원하던 것인지, 즐거운지 지겨운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 일을 통해 성공했을 때 얻게 될 과실에 대해서는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른바 '목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죠. 


연차가 좀 쌓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어떤 일을 제대로 배우고 능숙해지려면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몇 년은 걸린다는 사실을요. 


스키를 예로 들자면, 최소 2~3 시즌은 시즌권 끊고 수십 번은 타봐야 스키를 제대로 배우고 또 즐거움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사실 스키를 핑계로 친구들과 놀거나, 인스타 업로드용 사진이 주 목적이거나 겨울에 하얀 설원에 다녀왔다는 그 사실 자체가 좋았던 것이지 스키를 탄다는 그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보통 내가 잘하는 일에서 느껴지는 것이고, 그 수준까지 스키를 잘 타려면 오래 타봐야 합니다. 즐거워서 스키를 타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는 스키를 오래 타다보니 즐거움과 매력을 느끼게 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가설을 가지고 일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핫한 쁘걸, 브레이브걸스를 생각해봅시다. 이렇게 성공하고 나서 보니 지난 5년간 여기저기 홍보하러 다닌 곳들과 위문 공연 등 관련 자료들이 유튜브에 어마어마하게 뜨더라구요. 물론 꼬북좌의 미소처럼 신나게 공연하고 관객들이 열광한 무대도 있었지만 관객 반응도 시원찮고 듣보잡 취급을 받는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쁘걸과 관계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하니까 안 되는군. 전략적으로 OO로 방향을 수정하고 시도해봐야겠어.'라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식으로 일했을까요? 정말로?


일을 바라보는 관점 중 목표나 의미, 즐거움, 원하는 일 등등의 조건을 붙이는 것들은 단순히 관점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우리에게 굉장히 해롭습니다. 


이렇게 형이상학적이고 신성해보이는 무언가를 일에 갖다 붙히게 되면 그렇지 못한 현실과 자기 자신을 결과적으로 폄하하고 싫어하게 되니까요. 


또 다시 의미 없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월요일이 싫고, 그 일을 하는 나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게되면 결국 일을 대충 하면서 퇴근시간만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 일하다 보면 주변과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죠. 관계 속에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탓에, 직장에서의 관계가 악화되면 일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게 될 여지는 더더욱 줄어듭니다.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미나 목표 없이도 긍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어떻게 해야 일하는 내 모습에 만족하게 될런지, 출근하는 내 모습이 우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Here and Now', 즉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엥? 지금까지 이렇게 길게 얘기해놓고는 결론은 결국 노오오력이라고?


노오오력은 남이 부여한 과제를 남이 만든 기준에 따라서 남을 위해, 혹은 남이 무서워서 하는 것을 뜻합니다. 취업하기 위해 학점 관리하고 스펙 쌓고, 회사에서 시킨 일을 처리하는 것은 노오오력의 일환이죠. 인생에는 크게 보탬이 안 되는 태도입니다. 노오오력의 끝에는 결국 번아웃과 망가진 몸이 있을 뿐이니까요. 


남이 만든 기준에 자기를 짜맞추다보면 어떠한 즐거움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돈 버는 재미'밖에는 느낄 수 없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업무상 정보를 활용하는 공기업 직원이 되는 것이죠. 


제가 말씀드린 Now and Here, 최선의 전제조건은 바로 '나 자신이 정한 기준'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골목식당으로 유명해진 연돈의 사장님은 대단히 엄격하게 재료를 준비하고 또 관리합니다. 남이 보던 말던, 매출이 어떻든 절대 타협하지 않았죠. 덕분에 10여 년이 넘도록 돈도 못벌고 산꼭대기 집 셋방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새벽에 가게에 나와 깐깐하게 재료를 점검하고 돈가스를 튀겼습니다. 연돈 사장님이 '이렇게 만들다 보면 입소문도 날테고, 먹방 트렌드와 맞물려 요리 프로그램에 소개될 가능성이 커'라고 예상하고 행동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 순간에 몰입한 것이죠. 


몰입은 자기의 내적 기준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그 순간을 의미합니다. 연돈 사장님은 그저 자기 일에 몰입했고 그 몰입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백종원씨를 만난 것 뿐이죠. 가게가 터져나갈 정도로 손님이 몰리고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음식을 계속해서 만들었을 뿐입니다. 



배타고 몇 시간 가다보면 정말 힘듭니다. 멀미라도 생기면 순간순간이 고통이죠.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해봤자 얼마 못 번다고 하면 굳이 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브레이브걸스는 백령도 공연에서 밝은 웃음을 보여줍니다. 그냥 자본주의 미소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백령도까지 가서 흙먼지 속에서 자본주의 미소를 띄우는 프로 정신이면 인정해야죠. 


백령도에서 좀 대충 한다고 해서 손해배상 소송이 걸릴 것도 아니고 또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게 화제가 될 것이라고는 멤버들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가설이나 목표도 없이, 이왕 멀리까지 와서 하는 공연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것 뿐이고 또 장병들에게도 좋은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정도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몰입하는 태도가, 자기 스스로 정한 약속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켜켜이 쌓여서 기적이 생겨납니다. 




일을 하다보면 때론 어떤 구체적인 목표도 필요하고, 가설을 검증해야 할 때도 있고, 일에 의미나 즐거움을 부여하지 못하면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은 때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들은 모두 외적인 요소들이고, 일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입니다. 일을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기 때문에 목표가 필요하고 의미가 필요하고, 가설이 필요한 것이죠. 


그냥 그 일을 할 때 다른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그 일을 잘하기 위해 집중하는 순간의 느낌이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여야 성과가 생깁니다. 그 일에 몰입을 할수 있어야 성장이 되고, 그래야 일을 하더라도 번아웃이 되지 않고, 주변과 관계가 망가지지 않으며, 무엇보다 스스로 그 일을 하는 자기를 낮춰보지 않고, 시간낭비라고 여기지 않으며, 그래서 주변과 관계에 매몰되지 않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이렇게 몰입을 반복하다보면 내 앞에 어느 순간 선택지들이 생겨나면서 나를 앞으로 전진시켜 준다는 겁니다. 비록 그 전진이 현실적인 성공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아, 내가 이만큼 열심히 살았구나. 나름 즐거웠고, 의미도 있었구나’ 라는 만족감과 자기유능감을 가지게 해줍니다.  


내가 이따위 일을 하려고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무슨 시간낭비같은 일이냐고 생각되고, 일을 좀 하려고 하는데 상사나 동료가 미친놈이어서 못해먹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지금 여기, 내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가 정한 기준을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관심이 ‘내 일’에 집중되면 그 일 자체 외에는 일의 의미도, 주변부의 반응도 모두 부차적이 됩니다. 그래야 삶이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워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몰라서 못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