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IR에서 매출 전망의 설득력 요소
스타트업들의 IR 자료 준비를 도와주다보면 대표자들에게 참 이해시키기 어려운 개념이 '매출 드라이버' 또는 '성장요인'에 대한 것이다.
각 사업은 그 사업 고유의 특징이 있지만, 동시에 산업적 특성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각 산업별로 통상적인 경쟁의 핵심 요소가 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회로 선폭 축소와 생산 수율 향상 기술, 오프라인 유통업에서는 매장의 위치와 MD 및 매장구성, 이커머스는 가격과 배송 경쟁력이다. 아무리 혁신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이런 본질적인 요소에서 경쟁사를 밀쳐낼 수 없다면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물론 스타트업은 대형 경쟁사 대비 결코 모든 면에서 나을 수 없기 때문에 제한된 시장 또는 특정 이유로 제한이 있는 시장에서 짧은 시간 동안 우위를 차지하면 된다.
마켓컬리의 시작 시점에 쿠팡 등의 대형 이커머스는 물론이고 이마트 같은 오프라인 플레이어들에 비해도 결코 모든 면에서 가격 경쟁력과 물류 경쟁력을 갖췄을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마켓컬리는 강남이라고 하는 한정된 지역, 신선식품이라는 한정된 카테고리, 그리고 새벽시간대 배송이라는 한정된 물류 영역에서만큼은 '가격과 배송 경쟁력'을 확보했다. (물론 컬리의 제품은 절대 가격 기준으로 볼 때 비싸지만, 강남에서 새벽에 물건 배송을 한다는 가치는 고객들의 기회비용 대비 저렴했다.) 이후 2~3년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대형 이커머스 업체가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내놓았지만, 이 때는 이미 컬리의 브랜드 파워가 경쟁을 버텨낼만큼 성장한 시점이다. 즉, 컬리는 '가격과 배송' 이라는 이커머스의 경쟁 문법을 시장을 스스로 제한 (강남, 신선, 새벽) 함으로써 경쟁을 버텨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고, 매출을 끌어올리는 드라이버를 현실에서 구현해낸 것이다. 지금의 컬리는 이미 가격이나 배송으로 승부하는 규모를 넘어서서 그 자체의 브랜드 파워 및 충성고객들을 통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배달앱의 초창기에는 음식점 전화번호를 남보다 빠르게 모아내는 것이 중요했고, 배달의 민족은 창업팀이 직접 스스로를 갈아넣어 남보다 빠르게 해결했다. 그 결과로 초기 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단 공급자들이 확보된 상태에서는 이제 수요를 끄집어 올려야했고, 다른 기술적인 요소가 별로 없는 앱 서비스 이기 때문에 마케팅으로 승부해야 했다. 즉, 매출 드라이버가 광고/마케팅이었고, 때문에 2014~15년 배민은 매출액의 70%를 넘는 광고비와 프로모션 비용을 소진했고, 그만큼 매출을 더블링시켰다. 즉, 배달앱 시장의 매출 드라이버가 이제 남보다 큰 광고비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이후에는 배달 시간을 줄이는 것이 숙제가 되어가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쿠팡이 먼저 치고 나와서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즉, 배달앱 시장은 초기-중기-현재 순으로 볼 때 커버리지-인지도-배달속도로 성장 요인이 변화해온 것이다.
매출 드라이버의 개념은 바로 이것이다.
그 산업에서 필수적인 성장 혹은 경쟁을 버텨낼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되면 매출로 전환되며, 초기 매출 성장기동안 어떻게해서 경쟁을 배제해낼 수 기회를 만들 것인지가 매출 드라이버에 대한 설명이고, 성장요인이 된다.
많은 스타트업들의 IR 자료가 밋밋하고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산업을 관통하는 핵심 성장 요인'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채 그저 '좋은 제품이고, 능력 좋은 애들이 잘 만들었어요. 이제 시장 나가서 광고해서 인지도 높이면 매출 나올테니 광고하게 돈 좀 주세요' 라는 내용만 있기 때문이다.
1. 내가 속한 산업의 매출을 끌어올리는 요소가 무엇이고,
2. 그 요소가 고객의 니즈에 대해 어떻게 해결책이 되고,
3. 우리가 그 요소를 남들과 어떻게 다르게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4. 아직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시장에서 실적을 내고 있고,
5. 이 요소를 향후 어떤 방법으로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어서
6. 3년뒤, 5년뒤 우리의 실적은 이렇게 J 커브를 그릴 것이다.
7. 우리가 이 정도로 인사이트, 혹은 한 칼이 있으니 투자해서 우리의 성장 과실을 함께 누리시라~
콘텐츠나 deep tech 처럼 이런 논리가 필요없는 영역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플랫폼이나, 각종 서비스나 데이터 앱, 커머스 등에는 똑같이 적용되는 개념이다. 산업을 관통하는 경쟁력 요소를 정의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경쟁을 순간적으로나마 배제해낼 방안을 명쾌하게 밝혀야 IR 장표의 마지막에 나오는 '향후 실적 전망'이 납득이 된다. 이 전망이 '소설'이 되느냐 아니면 '계획'이 되느냐는 결국 매출 확보와 성장의 요인을 정확히 짚어내느냐, 그리고 현실에서 그 요인을 구체화시켜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