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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y 24. 2021

'실무' 부서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

LOB(Line  Of Business)와 개인의 커리어

경영학에는 Line of busine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줄여서 LOB라고도 하는 이것은 기업이 돈을 버는데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부서들을 의미합니다. 


제조업에서는 R&D, 생산기술, 영업이 LOB에 해당합니다. 오프라인 유통사라면 MD, 매장관리가 LOB에 속하며 경우에 따라 마케팅 또한 LOB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사의 LOB는 자금 유입, 상품개발, 영업점입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에서 LOB를 주제로 꺼낸 것은 이것이 단순히 기업 내 부서별 분류 기준이 아니라, 개인의 커리어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1. Cost Center로서의 지원부서


LOB 그 자체가 기업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외의 부서는 LOB를 '지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원은 대부분 비용을 소모하게 됩니다. 이렇게 돈의 관점에서 부서를 바라보면 LOB는 Profit center, 지원부서는 Cost center로 분류하기도 하죠. 


지원부서, 그러니까 돈을 쓰는 부서라는 것은 LOB에 비해 상대적으로 업무량에서 여유가 있고 경영진의 압박에서 조금은 자유롭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커리어에 불리한 요소들이 참 많습니다. 


우선은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 지원부서는 구조 조정 일 순위가 됩니다. 보너스 등의 보상에서도 LOB가 우선순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승진 역시 지원부서는 뒷전이죠. 


게다가 지원 업무 상당수는 외부에 아웃소싱도 가능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차피 돈 쓰는 부서인데, 내부에서 하나 외부에서 하나 큰 차이는 없거든요. 



2. LOB 관점에서의 개발자 채용 열풍


요즘 기업들은 개발자 채용에 혈안입니다. 유능한 개발자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연봉은 물론, 파격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는 덕분에 개발자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되었습니다. 


개발자분들이 네카쿠라배(네이버,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배달의민족)나 3N(넥슨, 네오위즈, NC소프트)로 취업하는 것은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IT 기업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발 그 자체가 LOB에 속해있기 때문이죠.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니 당연합니다. 


반면에 대기업이라고 해도 제조, 유통, 금융 등 전통적인 업종에 속한 개발자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이들 업종에서는 개발이 LOB가 아닌 지원부서 소속입니다. 즉, 급여도 나쁘지 않고 워라밸도 맞출 수 있겠지만 LOB가 가지는 치열함과 성장은 느끼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요즘 기업들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내세우면서 사업 모델 자체를 온라인화 할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비즈니스 속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기간에 급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니, 아직까지는 단순 선언이나 구호에 가깝다고 봐야겠죠.



3. 커리어 선택의 핵심 고려 요소


취업할 때, 혹은 커리어 초반 주니어 시절에는 반드시 LOB에 몸 담아야 합니다. 작은 회사라도 '매출을 직접적으로 올리는' 부서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내가 만드는 부가가치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지, 고객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돈을 주는지,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지를 경험하고 커리어를 성장시키려면 매출과 직결되는 업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비단 개발자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커리어 선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R&D, 생산기술, 영업, MD는 거의 모든 회사에서 매출과 직결된 일을 합니다. 물론 R&D는 회사에 따라서 매출과 연관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서도 Profit center 중에도 핵심으로 취급받습니다. 문과생들이 많이 취업하는 마케팅도 B2C, 콘텐츠 업종에서는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금융업에서는 당연히 재무가 주력이며, Corporate finance 또한 IB나 자산운용사, VC에서는 핵심 직무입니다. 



4. LOB에 속해있지 않는 경우의 커리어 패스


그런데 LOB를 경험하려고 해도 참 어려운 업무나 상황이 몇몇 있습니다. 


특히 HR은 HR 컨설팅이나 인력 아웃소싱 전문업체를 제외하면 LOB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컨설팅이나 아웃소싱에서도 HR 관련 지식/경험보다 영업력이 더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에서 한두 명의 인사팀 직원이 회계, 총무, 인사 등 모든 일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HR이 대표적인 Cost center라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커리어를 출발하게 되면 LOB로 진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HR이나 관리업무를 통해 매출을 올리는 비즈니스는 HR 지식을 가진 사람을 외부에 용역으로 제공하는 사업  - HR 컨설팅이나 대행업체들 -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은 포장을 어떻게 하든 실질적으로는 인건비 장사라고 할 수 있죠. 결국 전문직이라는 미명 하에 워라밸은 엉망에다 급여도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 업종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서 산업에서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기도 어렵습니다. 회계사가 아닌 회계법인 직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이런 경우는 국가공인 자격증이 있지만 HR 분야는 그런 것도 없죠. 노무사는 기업 HR과는 결이 많이 다르니까요. 


일반 기업에서 HR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자기만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관련된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따던지,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던지, 대학 강단에 서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아니면 한 회사에 오래 다니면서 지원부서의 장을 노려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전제 조건은 '한 회사에 오래' 다녀야 한다는 것인데요, 회사에서 이 부서, 저 부서 옮겨 다니게 되면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의 전문성은 '회사에 대한 이해도와 내부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 바깥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지만 안에서는 굉장히 유용합니다. 기업이 커질수록 이런 종류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 수가 매우 적다는 것과 요즘처럼 시장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밀려나기 십상이라는 점이 아쉽지만요. 


물론 지원업무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영업, 마케팅, 기획 등의 핵심 부서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확률이 높지도 않을뿐더러 이동한다고 해도 버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성향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냉정한 분석과 의사 결정을 토대로 일하는 실무 부서와 개개인의 입장과 관계를 중시하는 지원 부서의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원부서에서 일했던 관점으로 LOB 업무에 임하면 실패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결국 지원부서에 몸담고 있다면 매우 똑똑한 참모가 되거나 혹은 해당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교수나 소수의 전문가가 되어서 HR 임원으로서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업무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그냥 현실에 만족하면서 제3의 길을 찾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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