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다
신경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할 때 두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연구하눈 사람들이다. 이들의 연구 중에 사람이 어떤 문제나 상황을 내 문제로 인식하느냐 혹은 나와 상관없는 문제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두뇌가 전혀 다르게 처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연구가 있다. (An fMRI Investigation of Emotional Engagement in Moral Judgment, Joshua D. Greene et al. Science 293, 2105 (2001);)
이 연구 결과를 요약해보자면,
남의 일, 즉 내가 개입되어 있지 않는 일에 대해 우리 뇌는 이성적, 객관적 판단을 하는 영역이 움직이는 반면
동일한 사안이지만 나의 일, 즉 내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거나 내가 그 일의 결과에 책임이 있는 상황이 되면 감정적 판단 영역이 활발해진다는 것이었다.
남의 바둑 훈수는 논리적으로 할 수 있지만 내 바둑엔 감정이 앞서게 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성숙한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너무 냉정한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지, 그리고 내 일에 대해서는 앞뒤 없이 내가 옳고, 맞다고 받아들이지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려고 한다. 진실이나 진리는 거의 항상 이성과 감정 그 중간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문제 있는 인간이라고 하면 이기심이 심하게 넘치거나 완전 개꼰대거나 권력과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을 떠올리지만, 사실 문제가 더 심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 있다.
가장 문제적 인간들은 타인에게는 냉혹하고 단정적으로 ‘무능한 것들이 욕심만 많고 싸가지 없다’ 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피해자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이다.
이 믿음은 극단적인 말과 글, 그리고 공격적인 태도로 나타나는데, 말과 글이 극단적이고 공격적이면 그만큼 사고가 경직적이라는 뜻이고, 이성과 감정을 자기 유리하게만 사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가 극단적인 생각이 있어서 말과 글이 극단으로 갈 수도 있지만 사실은 반대로 글과 말과 행동을 극단적으로 하다보면 우리의 사고가 극단적으로 되고, (사고가 극단적이어서 극단적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행동을 하다보니 사고가 극단적으로 되는 것) 극단적인 사람들이 몇 명 모이면 집단 사고로 인해 더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SNS 나 각종 커뮤니티 등에 극단적이고 단선적인 글들을 쓰는 것은 일부분 후련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사고를 갈수록 좁히고 경직적으로 만들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꾸 “씨바, 내 말이 맞잖아!” 같은 태도만 부른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이 태도는 사실 나르시시스트라는 매우 문제적 성격이 보이는 태도와 똑같다는 것인데, natural born 나르시시스트를 제외하고도 사람은 극단적으로 사고하고, 타인에겐 이성적 잣대를, 내 일에 대해서는 감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나르가 될 수 있다. 자연적 나르는 아무리 높게 봐도 전 인구의 4%가 안되는데, 이 정도 비율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이기주의자, 공격적 비판론자, 완전히 꽉막힌 꼰대 등이 그렇게 넘쳐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