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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Aug 24. 2023

예능으로 보는 스타트업 창업 6. 디테일의 힘

악마는 디테일을 입는다. 

예능 골목식당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씨가 점포들을 돌아다니면서 늘상 지적하는 것들 중 하나가 메뉴판의 배치와 모양새다. 삼겹살부터 고등어구이에 비빔밥까지 모두 적혀있는 메뉴판은 대체로 나이많은 주인이 관리를 부실하게 하는 오래된 작은 식당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방에 있는 식당들이나 서울 노포들 중에는 이런 분위기만을 풍길 뿐 대단한 맛집들도 많다.) 실체가 어떠하든 메뉴의 종류와 메뉴판 모양새만으로도 그 집의 전문성이나 집주인의 열정, 솜씨 등을 추론해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신경을 쓰는 것이다. 

장사천재 나폴리 편에서 보면 제작진은 한 달 전부터 촬영할 식당에 가서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한다. 당연히 화면에 나와야 하니 예쁘게 꾸미려는 것이고, 한국 음식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포그래픽을 벽에 붙이는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데, 몇 가지 독특한 제안을 한다. 눈에 띄는 것은 테이블의 크기와 트레이다. 
밥, 국, 반찬 여러 종으로 구성되는 백반집의 특성을 고려할 때 단일 메뉴를 중심으로 하는 알라까르뜨 형식의 서양식에 비해 테이블을 넓게 쓰게 된다. 백종원은 이 지점을 걱정해서 테이블 크기를 지적한 것. 그리고 식사는 트레이 전체로 제공되도록 한다. 트레이를 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는 군대나 학교 식판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뭔가 너무 각박한 느낌이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형식이지만, 고객 옆에서 반찬을 하나씩 내려놓지 않고 주방에서 전체를 한꺼번에 준비할 수 있어 처리 속도가 빠르고 비주얼적인 면에서 통일성을 제공할 수 있다. 괜히 패스트푸드 점들이 트레이를 사용하는게 아닌거다. 더불어 트레이를 쓰면 홀서빙 인원들의 숙련도가 낮아도 이동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과 테이블보를 사용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다는 장점도 있다. 또 백종원씨가 트레이에 담아가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식당의 구조가 앞뒤로 긴 구조를 가지고 있어 우리네 백반집처럼 여러차례 고객에게 왔다갔다 할 경우 로스가 너무 많다는 이유도 있었을 거다. 

서진이네에 대한 영상을 보면 현지에서 오픈을 준비하던 PD가 6백만원이 넘는 테이블형 냉장고 (김밥 재료들을 오픈된 형태로 넣어놓는데 냉장이 되는) 를 구매하겠다고 해서 한국에 있던 나영석 PD가 반려를 했는데도 계속 우겨서 왜 그러나 싶었다가 현지에 온 다음에서야 이해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지의 온도가 30도를 훌쩍 넘는데 오픈형 식당이어서 김밥 재료가 상할까봐 고가지만 그 냉장고를 고집했다는 것이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바쁘고 정신없어서 어느 순간부터 전체적인 방향만 맞으면 디테일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된다. 린하게 사업하라는 스타트업의 모토에 따라 얼기설기 만들더라도 본질적 가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강하게 박히기 마련이고, 특히 온라인 서비스의 경우 빠르게 업데이트를 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의 디테일 부족은 감수할만한 리스크로 여겨지기도 한다. 실제로 100%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로 시장에 나가는 것은 PMF도 아직 찾아지지 않은 상태로는 매우 위험한, 피해야할 선택이기도 하고. 

하지만 위의 예시들에서 저런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큰 백반집 쟁반에 수십개의 반찬을 운반할 실력이 없는 초보 알바들은 쟁반을 들지도 못했거나 엎었을 것이고, 식탁에 내놓을 때마다 반찬 위치가 달라서 비주얼도 챙기지 못했을 것이며, 식탁이 좁아서 한정식집처럼 반찬을 포개거나 아니면 반찬 가지수를 최대한 줄여야 했을거다. 서진이네에서도 김밥은 아마도 현지 날씨 때문에 첫날 잠깐 시도했다가 포기했겠지. 맛이나 비주얼적인 면에서 분식집 메뉴의 대표주자인 김밥이 분식집 컨셉의 식당에서 없어지는 일이 생겼을 것. 

디테일을 능숙하게 챙기는 것은 프로 쉐프들이 나오는 프로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수십년의 경험이 이런 일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원래 그 분야에 대한 수십년의 경험이 없는 회사고, 그 분야 자체가 아예 새로 만들어지는 산업인 경우도 흔하다. 필요한 디테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챙길 것인지를 경험에서 배울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경우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대표자의 집요함이다. 

최근 한 사내 벤처팀을 만났는데, 시장 관련 조사를 하는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집요함으로 잠재고객과 잠재 경쟁자, 그리고 협력 파트너들을 만나고 다녔다. 불과 두어달 사이에 해당 분야에 대한 거의 모든 질문을 현장에 대한 직접 방문 또는 관련자 다수의 인터뷰에 기반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 사업 모델의 사업성은 확신을 갖기 쉽지 않은 난이도 있는 사업이었지만, 그 창업자에 대해서는 관련자 모두가 입 모아서 하는 말이 ‘저 정도로 꼼꼼하게 챙기면 뭘 해도 하겠다’ 였다. 

사업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도착은 디테일로 한다. 그리고 사전 경험이 풍부할 수 없는 스타트업에서 이 디테일은 대표자의 집착과 집요함과 꼼꼼함이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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