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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Aug 30. 2023

투자 유치와 '내 사업'의 의미

1. 현재의 주식회사 구조에 대해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주식회사의 극초기, 네덜란드에서 일반인들이 돈을 모아 배를 사고 선원들을 고용하던 시절을떠올리면 된다. 스페인 등에서는 돈많은 왕족이 혼자 펀딩을 했지만, 돈 많은 왕족이나 귀족이 없던 가난한 스페인의 식민지 네덜란드는 일반인들이 돈을모아 남미로 무역선을 보냈다. 당시 이 사업은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무사히 돌아올 확률이 20%도 안되던 벤처였다. 이들 일반인들이 주주였고, 이들이 모여 (‘주주총회’) 대표자를 뽑고, 그 대표자들이 경험많은 선장과 선원들을 채용하도록 했다. 이 때 채용을 위임받고, 채용 인원에 대한 보상을 결정할 권리를 받은 이 대표자들을 ‘Board of directors’, 즉 이사회라고 했다. (실제 BOD의 역사는 14세기 영국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고, 19세기 중반까지는 여전히 주주총회의 대행자 정도의 개념이 강했다. 19세기 후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이사회의 역할이 커지게 되고, 현재의 기업 구조에서 사실상 최고의사 결정 기구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다. 주식회사 개념이 약하던 1980년대까지 우리가 보통 기업의 장을 ‘사장’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주로‘대표이사’라고 부르는걸 보면 IMF 이후 우리에게도 이러한 주식회사의 지배구조가 널리 알려진 셈. 가장 최종적인 의사 결정 권한은 여전히 주주총회다.) 이들은 보통 퇴임 선장 출신들이어서 주주들의 의견도 이해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선발할 선장과 선원들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선발된 선장과 선원은 배를 타고 나가면 현지 항구에 도착해 본국에 연락을 보내기 전까지는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했고, 현지에서 새로운 선원을 선발하거나 배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구매하는 등의‘운영’에 대해서는 전권이 주어졌다. 당시 통신 기술로는 달리 방법도 없었기도 했지만, 현지 상황을 주주나 이사회가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운영에 너무 세세히 간여하는 것도 성과 창출에 부정적이었기도 하다.  


2. 이 구조가 고스란히 내려와서 자본을 대고 사업을 출범시키는 주주, 주주총회의 뜻을 따라서 사업 운영자를 선발하고 운영 원칙을 정립하며, 운영자에대한 보상을 정하는 이사회, 그리고 이들의 위임을 받아서 현장에서 운영을 책임지며 최종적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경영진’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3. 경영학 1-1에 나오는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자기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을 때는 주주총회=이사회=경영진=대표자 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되는데, 외부 지분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간섭’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분명 간섭이 맞기는 맞지만, 외부 투자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선량한 관리자’의 책임이 분명 생겨난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4. 보통 ‘내 사업에 외부 투자를 받았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정확히는 지분 투자 받기 전까지만 ‘내 사업’이고, 이후부터는 ‘주식회사의 사업’이 되고, 나는 그사업을 성공시킬 의무를 가지는 관리자가 된다. ‘사업 주체는 창업자인 나고, 지분투자자는 그냥 나중에 투자 수익 챙기고 떠날 애들’ 이라는 사고는 주주 및 이사회와 경영진 사이에 쓸데없는 갈등과 불신을 부추기는 사고다. 처음엔 ‘내 사업’이지만, 외부 투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사업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나는 그 생명체를 돌보며 키우는 ‘관리자’가 된다. 이 개념이 약하면, 우리가 늘상 욕해왔던 '극소 지분으로 그룹사 전체를 관리하며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는' 기업 총수가 될 여지가 생긴다. 최고위 경영진이 주주의 권리와 이익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기업을 이끄는 전횡을 21세기인 지금 다시 고스란히 반복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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