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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Sep 01. 2023

스타트업은 꿈을 꾸는 직업이다


스타트업은 꿈을 꾸는 직업이다.


미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East Coker” 라는 시를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In my beginning is my end.”


내 시작에 끝이 있다는 말이다. 이 때 엘리엇의 나이나 시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말은 우리 속담의 ‘수구초심’과 같은 말일게다.


이 맥락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글 대로만 해석을 좀 해보자. 

끝엔 결국 처음이 있다.


내가 스타트업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지가 만 7년이 넘어간다. 처음 스타트업 씬에 와서 만났던 당시 ‘초기 스타트업’들이 살아남았다면 8~10년차의 원숙 기업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이들의 부침을 보면서 지금에 와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 당시 만났던 창업자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진짜 ‘생각’에 따라 기업의 지금 모습이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말이지만,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던 그 순간 가지고 있던 우리의 진심이 긴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기업체의 운명에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인 것.


내가 ‘비즈니스 모델 30문 30답’ 책에서 자영업과 스타트업의 차이가 무엇일까에 대해 적었던 글도 이 맥락하에 있다. 기업의 규모, 성장성, 비즈니스 모델의 복잡성, 대표자 개인의 노동 투입 여부 등등 굉장히 많은 기준을 들이댈 수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에서 자영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는 결국 ‘창업자가 처음에 가졌던 꿈의 크기’다. 작고 소박한 꿈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꿈으로 건실한 자영업을 만드는 것도 좋고, 크고 허황된 꿈으로 큰 기업을 생각하는 것도 좋다는 의미다. 다만 작고 소박한 꿈으로 출발해 큰 기업이 되는 경우는 확률상 매우매우 낮아 보인다. 기업이 창업자의 손에 있는 동안에 기업의 운명은 창업자의 꿈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고, 특히 그 꿈중에서도 창업을 시작하는 그 순간의 창업자 ‘마음 속’에 있던 꿈이 결정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헛된 망상’이나 ‘지극히 이기적인 꿈’도 그런 의미를 가지느냐는 질문이 따라 나오게 되고, IR 자료에 있는 ‘비전’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도 나오게 된다.


모두 아니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대표의 꿈이 가져야할 조건 첫번째는 ‘진심’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창업을 하다보면, 아니 그냥 어떤 일이든 몰두를 하다보면 그 일의 진행과정에서 하나의 생각이 생겨나고, 그 생각을 내가 처음부터 가진 생각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사실 많은 경우 그 생각은 원래 내 진심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 과정에서 누군가의 영향, 나만의 오해, 환경의 압력 등이 결합된 화합물이다. 그리고 보통 IR 자료에는 이 화합물이 녹아들게 된다. 왜냐면 그래야 투자 받기 좋거든. 하지만 많은 경우 창업자 본인은 잘 안다. 사실 저렇게 적혀 있는 비전은 내가 정말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꿈이 미묘하게 변형된 것이고, 그 꿈과 똑같지는 않다는 걸. 그리고 기업의 운명은 초기에 가지고 있던 꿈이 장기간에 걸쳐 실현되지 IR 자료에 있는 비전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정말 초기 진심을 스스로 잘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자기가 죽도록 만들어온 사업이 자기가 처음에 생각했던 진심과 달라졌다는 사실은 대략 창업 3~4년차, 즉 창업 직후의 아드레날린 농도가 빠지고 난 이후에 깨닫는다. 시장 상황을 깨달아가고, 고객을 만나면서 내가 생각했던 그 진심이 사실은 완전히 소설이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월급주고, 비용 지불하고, 생활비 마련하느라 쪼이다보면 진심은 사라지고 생활인으로서의 사업이 남게 된 뒤에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때의 회사와 사업은 내 진심에서 멀어진 것이기에 그 때부터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숙제나 부채처럼 느껴지게 된다. (물론 이 진심이 잘 지켜졌고 성공까지 한 케이스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두번째, 꿈은 꿈다워야 한다. 현실성이 있을 필요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동의해줘야 할 이유도 없다. 중력을 통제해 사람이 공중에 뜨던, 암을 모두 치료하던, 타이탄으로 이주를 하던 창업, 그것도 스타트업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그 무엇을 간절하게 생각하면 된다.


세번째, 그럼 허황되고 무책임한 꿈도 상관없다는거냐 싶겠지만, 꿈에 책임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상상하고 원하는 것에 잣대를 들이댈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모든 꿈이 이 조건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너무도 이기적인 목표나 단순한 사회적 성공, 즉 명예, 유명세, 권력 그 자체, 갑부가 되는 것은 꿈이 아니라 그냥 욕망이다. 욕망은 꿈이 아니다. 꿈은 나 혼자 꾸는 것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동의해주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그 꿈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해 나갈 수 있는 꿈이어야 한다. 내가 갑부가 되고 싶다고 남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나는 암을 정복하고 싶다고 남을 설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테라노스의 창업자처럼 돈많고 유명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꿈이라고 믿기 시작한다면 현실을 왜곡하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왜곡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꿈은 내가 꾸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조건이 붙는다.


창업을 시작하고, 굴려내고 있는 창업가들을 이끌어가는 힘은 맨 처음에는 꿈 그 자체다. 하지만 풍파에 시달리고, 시장에서 깨져나가고, 그 사이에 들어가는 많은 돈과 직원들,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에 노출되다보면 어느 순간 꿈은 희미해지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창업자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 이러다가도 어느 순간 빛 들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처음의 생각이 희미해지면 기업은 그저 표류하는 돛단배가 되지 대양을 헤쳐나가는 범선이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설사 범선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창업자의 마음 한 구석에 ‘나는 사실 이 방향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라는 회한을 남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늘을 뒤집고, 우주의 끝에 가겠다는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그 꿈을 가지고, 그리고 그 꿈을 지키면서 가는게 스타트업 창업의 과정같다. 자신을 지키며 가자.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William E. Henley, ‘Invictus(188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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