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
스타트업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매우 다른 말이 두 가지 정도 있다.
1. 신규 시장에서 2등을 노려라.
2. 전근대적 거래 관행이 있는 곳에 가서 산업화를 시켜라.
신규 시장 2등의 의미는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내놓는 것보다 남이 먼저 내놓았지만 아직 부실한 제품/서비스를 확실히 개선한 제품을 나중에 내놓으라는 뜻이다. 없던 컨셉의 물건 내놓는 건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있는 제품 개선하는 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할 수 있다. 이 모델의 최강자가 애플인 건 다들 알테고.
시장 혁신을 한다고 하면 '없던 물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사실 없던 물건은 그저 신기할 수는 있지만 시장에 큰 혁신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대부분이다. 제품 자체도 부실할 위험성이 많고, 시장에서도 이를 수용할 준비가 안되어 있기도 하다. 2등은 이런 위험성을 피해갈 수 있다. First to market이 혁신이 아니라, mass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혁신이다.
(네이버나 배민 모두 first to market 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First mover disadvantage 라는 말이 있을까.)
전근대적 거래 관행이란 '계약 기반'이 아니거나, '중소규모의 업체들이 인맥 기반의 장사'를 '좁은 지역과 범위에서' 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국내 유통업의 발전은 동네 슈퍼와 전통 시장을 대형 마트와 편의점으로 대체하는 방식이었고, 영화관 사업도 지역별 단관 형태의 영화관을 멀티플렉스 체인과 온라인 기반 예약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방식이었다. 배민도 마찬가지고.
물론 지금까지 이런 형태의 거래가 남아 있는 곳들은 변호사나 의사, 택시처럼 직역의 서비스에 대해 법적인 보호가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 역시 결국은 기업 중심으로 서비스되는 산업화가 될 것이다. (가령 변호사업은 결국 일부 유명한 로펌의 송무 중심의 초고가 서비스와 AI 기반의 지식 서비스에 가까운 저렴하지만 다수의 사용자가 있는 기업화 영역으로 나뉘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변호사들이 먼저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보다는 미국에서 생성 AI 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준에 올라오면 당연히 법무나 의료 등 특정 도메인에서의 전문성과 저렴한 비용을 결합한 '법무 기업', '의료기업' 등이 될 것이고, 한국 시장에도 강력하게 개방을 요구하게 될거다. 미국의 로펌 한국 진출이라면 그래도 막을 여지가 많지만, 기업화된 IT 서비스라면 막기 매우 곤란할 수밖에 없다. MS의 빙이 미국에 서버를 두고 한국의 판례와 법률 DB를 구축한 다음에 기초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한다면 이걸 막을 방법이 있을까? 예전의 영화계 스크린쿼터 철폐와 같은 식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이야기.) 물론 로톡이나 타다처럼 계속해서 실패 사례들이 쌓이겠지만, 어차피 댐이라는 건 한번 구멍 뚫리면 끝나는 것이고, 미국 애들은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남에게 강요하는데 매우 능하다.
잘 뒤져보면 국내엔 여전히 이런 식의 '알음알음', '관행 기반'의 일들이 남아 있다. 결국은 냉정한 계약 기반의 일들로 대체될 것이고, 사업을 시작할 여지는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