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정말 무한대의 기준이 존재할 수 있지만, 내가 선호하는 구분 기준은 ‘보유한 자산의 종류’에 따른 것이다.
기업의 자산은 기업이 사업을 하면서 수 년에 걸쳐 활용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자산은 재무상태표상의 ‘자산’ 항목에 있는 것들이다. R&D를 통해 얻게 된 특허, 각종 설비나 장치류, IT 시스템, 토지나 건물 같은 부동산, 사업을 보장하는 계약이나 사업권도 당연히 이런 유형화된 자산이 된다. 하지만 자산엔 회계 장부상에 결코 표시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유명세나 명성, 외부 네트웍이나 권력과 영향력, 내부 핵심 인력들의 경쟁력, 무형의 노하우 같은 것들이 대표적.
아무튼 기업은 이런 다양한 자산을 가지고 있고, 사업은 이런 자산의 유무 혹은 종류에 따라 구분할 수 있고, 내 경험상 가장 명쾌한 분류다.
제조업은 ‘설비와 장치’ 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물론 ‘R&D를 통해 얻게 된 특허’, 그리고 ‘제조를 위한 노하우’ 등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일단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비와 장치를 통해 무언가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업종을 말한다. 설비와 장치라는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자본 투자가 따라오고, 판매와 상관없이 고정 비용으로 되기 때문에 생산량과 판매량이 줄어들수록 원가가 급격히 올라가게 되어 있다. 즉, 제조업은 설비와 장치라는 자산을 최대한 많이 굴려서 원가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파는 업종을 말한다.
유통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유통을 위한 인프라’와 ‘물류망’이다. 여기에 ‘좋은 제품을 MD해내는 능력’이 추가된다. 매장이나 온라인 사이트 같은 유통 인프라에도 역시 대규모의 자본이 투하되고, 특히 물류는 엄청난 부담이다. 이런 자산이 갖춰지지 않거나 극히 작을 경우 동네 구멍가게는 가능할테지만 결코 대규모의 사업체가 될 수는 없다. 즉, 유통업은 유통 인프라와 물류망을 최대한 활용해서 역시 원가 경쟁력과 판매/배송 능력을 갖춰서 경쟁하는 업종을 말한다.
종종 듣는 질문인데, ‘유통사의 PB와 제조업은 무슨 차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위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잘 정리된다. 유통사가 PB를 만들어 팔지만, 유통사는 유통 인프라와 물류망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자기 제품을 추가하는 것이고, 더불어 이를 통해 MD 차별화를 강화하려는 시도이지만, 제조 설비와 장치의 활용도에 집중하는 제조업과는 분명 그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많은 제조 스타트업이 사실은 '제조'업이 아니라 유통업이다. 왜냐면 제품 기획력만 있을 뿐 제품 제조를 실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애플이나 나이키는 좀 헷갈리는 업체들이다. 그들은 제품 기획업이라는 별도의 업종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이들은 자체로 보유하지 않았다 뿐이지 공급사들의 설비를 사실상 직접 통제할 정도로 영향력이 강력하기 때문에 설비 소유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제조업체다.)
제조나 유통뿐 아니라 모든 업종을 위에서 나열한 자산의 종류에 따라 구분할 수 있고, 그 분류는 사업에 대한 분명한 인사이트를 준다.
모든 사업은 ‘자산’의 회전율을 높여서 매출과 수익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산이 무엇이냐에 따라 기업이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업의 본질’이 정해진다. 인간이 포유류, 영장류의 운명을 결코 벗어날 수 없듯 아무리 스타트업이 세상에 없는 사업을 만든다고 해도 스타트업 역시 기업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고, 그렇다면 스타트업 역시 ‘보유한’ 또는 ‘만들고 있는’ 자산의 종류에 따라 업종이 정해지고, 그것을 얼마나 잘 회전시켜내느냐가 일단 기본적인 업의 본질이다. 이 업의 본질은 운동 선수로 치면 기초 체력 훈련이나 기본기 같은 것이다. 기술이 좋아도 체력이 떨어지면 크게 성공하기 어렵고 기본기가 취약하면 한 때 반짝할 수는 있지만 롱런이 어렵다.
자사가 보유한 자산의 종류를 잘 이해하고 이 자산의 회전율을 높이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기업을 하는 내내 잊어버리면 안되는 숙제고, 업의 본질을 잊어버리면 지금같은 위기 상황이 올 때 결코 버텨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