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건 제조업이건 플랫폼이건 스타트업이 최대한 피해야 하는 시장은 ‘구매의 반복성이 없거나 재구매 간격이 너무 긴’ 시장이다. 이런 시장은 단골이 없기 때문에 고객 CAC가 무조건 높을 수밖에 없고 고객에게 제품에 대한 노출이 아주 커야 하며, 고가의 제품군에서만 가능한 접근이라서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갖추기가 매우 매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테슬라와 스페이스 엑스를 만들어서 성장시킨 머스크는 슈퍼맨이 맞다. 제정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아무튼 이런 영역은 거의 항상 대기업의 사업 영역이거나 애초에 사업이 불가능한 산업이다.)
뻔한 이야기로 오프닝을 하는 이유는 의외로 이런 생각을 안하면서 사업을 시작하는 팀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고객이 한번 사면 최소한 1~2년 내로 내가 제공하는 제품/서비스 카테고리의 제품을 살 일이 없다면 나는 무조건 국내 시장 전체를 타겟으로 하던지 해외 사업을 바로 시작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가령 사무용 책상을 판다고 할 경우 한번 구매한 고객의 재구매는 아무리 짧아도 몇 년이 될 것이다. 이런 사업이라면 끊임없이 새로운 기업체 고객을 찾아야면 사업의 규모가 성장할 수 있다. 혹은 이사 서비스 관련이라고 해도 역시 고객이 6개월마다 이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니 끊임없이 새 고객의 연락이 와야 한다.
사업 아이템을 열심히 떠올려서 계속 사업을 키워가겠다는 노력은 좋지만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이 노려야 하는 시장은 크지 않은 가격에, 구매 주기가 짧고, 사람들의 반응도 빠르고, 입소문이 나며 재구매를 유혹할 수 있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자산을 쌓아올려서 고정비의 비중을 최대한 높인 상태에서 (즉 공헌이익율이 높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스타트업에게 기본적으로 맞는 접근이다. (쿠팡이 대규모 물류 투자를 한 것이나 테슬라가 슈퍼차저 충전 시설에 투자를 한 이유를 잘 생각해보자. 소프트웨어 기업은 좀 다르지 않나 싶겠지만, 소프트웨어 기업에게는 이게 잘 만든 SaaS 소프트웨어 자체, 특허같은 지적재산권, 그리고 설치 레퍼런스들이다.)
내가 하는 사업의 속성을 따져볼 때 시장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보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혹시 이렇게 구매 주기가 너무 길거나 반복 구매가 어려운 시장에 있지 않은지, 혹시나 이런 곳에 있다면 이 속성을 바꿀 여지가 존재하는지를 충분히 검토한 다음에 본격적인 제품 개발이나 시장 진입 같은 노력을 하라는 뜻이다. 만약 이런 시장에 들어갔는데, 속성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추구해야 하는 전략은 어떻게든 ‘독과점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술적인 장벽, 초기 인프라 투자, 산업 표준화 전략, 법률이나 규제 장악 등) 이런 독과점 전략도 먹힐 곳이 아니라면? 피봇팅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사업 성장이 거의 안이뤄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