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활용한다는건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
어느 기업이나 매년 매출 성장의 압력을 받고, 전년 대비 두자리 %의 성장을 당연히 목표로 정하지만, 생각만 그렇지 대부분의 기업에게 이런 목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만약 모두 10%가 넘는 성장을 달성한다면 우리나라 경제 성장율이 이런 식일 수가 없으니까.
대기업에게 더 어려운 도전은 이들의 커다란 덩치 그 자체에서 나온다.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액은 대략 300조원이다. 만약 전년비 10% 매출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삼성전자가 만들어야 하는 추가 매출은 30조원이 된다. 말이 30조원이지, 이 정도면 삼성물산이나 현대모비스 같은 규모의 기업을 매년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코스피 상위 기업 규모의 신규 매출을 매년 만들어야 하는게 대기업의 숙명. 경제 전체가 정체되고 글로벌 시장에서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단 이 규모의 사업을 키우기 이전에 도대체 어디에서 이 규모의 사업을 시작해볼 수 있느냐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대부분의 시장이 이미 형성되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서 갑자기 수십조원 규모의 시장을 매년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애플이 에어팟을 내놓고, 비전프로를 내놓는 이유도 기존의 완성된 시장의 성장율만으로는 매출 확대가 너무 어려워서 가능성이 보이는 신규 시장을 도전하거나 아예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법은 R&D를 통하거나 내부의 기타 경영 자원을 활용해서 기존 시장에서 단가를 높이거나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사도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고생해도 기존 점유율과 매출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삼성이 갤럭시 스마트폰에 매년 수많은 기능을 추가하고 강화하지만 매출액이 폭증하지 않는 것에서 잘 볼 수 있다. 즉, R&D의 대부분과 내부 자원 활용 전략은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게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보다는 기존 시장의 수성 전략에 가깝다. 마케팅 역시 마찬가지.
다른 방법은 괜찮은 외부 기업을 그냥 사들이는 것이다. 하만같은 회사를 사들이면 매출 10조원을 붙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와 전략적 방향이 맞고, 활용할 여지도 많으면서, 가격도 적절한 매물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잘못 사들이면 비싼 돈만 쓰지만 정작 모기업 또는 매입 기업의 가치를 해치게 되는 비극이 생긴다. 통상적으로 M&A의 실패율은 60%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현금이 있고 매입 대상이 나온다고 해도 쉽게 저지를 선택은 아니라는 뜻.
내부 R&D나 마케팅도 아니고, 외부의 완성된 업체 M&A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이래서 대기업들이 최근 들여다보는 대상이 스타트업이다. 물론 스타트업은 기존 대기업을 M&A 하는 것처럼 한방에 수조원의 매출을 가져올 방법은 전혀 아니다. 또 단기간내에 모기업의 실적에 큰 영향을 주기도 어렵다. 스타트업이라는 대상의 특성상 단기 솔루션은 전혀 아닌 셈. 대기업들이 꿈꾸는 케이스들은 예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사들였거나 구글이 유튜브를 사들였던 것처럼 아직 작지만 시장에 큰 가치를 줄 가능성이 있는 업체를 발굴해서 이 잠재력이 발휘되어 매출이 폭증하고, 이에 따라 모기업의 매출 또는 기업 가치가 함께 폭발하는 것이다. 물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는 매입 시점에 직원수가 20여명도 안되는데 무려 각 1조원을 주고 매입한 케이스다. 미국의 Cocky한 성공 창업자라면 질러 볼 수 있는 금액이지만, 과연 우리나라 대기업이, 아무리 총수라고 해도 이렇게 과감하게 지르는 경우가 가능할지 매우 의문. (이런 케이스는 지난 10여년을 뒤져봐도 현대차그룹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정도뿐인 것 같다. 이 케이스 조차 구글이 유튜브를 지르던 당시나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덜 도박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는 것을 선호한다. 기술 협업이나 시장개척과 공동 마케팅 등을 해 봄으로써 협업을 넘어서는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절차.
여기서 핏이 맞으면 아예 그룹사에 편입하는 것이고 아니면 바이바이니 쿨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연애 많이 한다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오히려 오픈 이노베이션을 하면서 서로 너무 간만 보다보니 그냥 과감하게 M&A했을 때보다 성과가 더 나오지 않을 경우가 많다.
또한 스타트업에 대한 협업이나 투자는 일반적인 기업의 M&A보다도 성공 확률이 훨씬 열악한 선택이다. 스타트업 기업 자체의 생존율이 극악이다보니 이들과 협업을 했거나 아예 매입했다고 해서 성공이 이뤄진다는 것은 망상. 대신 개별 스타트업의 가치는 일반 기업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여러 곳에 투자해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정리를 좀 해보자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활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성장 기회를 내부적 자원이 아닌 외부 자원을 활용해서 달성해보려는 전략적 노력의 일환으로 일반적인 M&A 등에 비해 리스크가 적지만 그만큼 성과를 만들 확률도 낮은 전략이기도 하다. 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등의 방법을 중간 단계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바로 인수하는 경우보다 성과가 더 낮을 확률도 높다. Low risk, low return이 여기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 대기업에게 low risk, low return 의 오픈 이노베이션과 과감한 선제적 M&A라는 옵션 두가지만 존재하느냐면 그건 아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