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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an 16. 2024

초기 스타트업의 의사결정과
창업자 개인의 특성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스타트업 창업팀은 창업 초기 1년간 대략 1만개의 의사 결정을 한다고 한다. 말의 맥락을 보면 수치적인 1만개라기보다는 매우 많은 의사 결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걸로 보이지만, 실제 제품 개발이나 초기 마케팅, 인력 구성 등을 하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논의될 때 하루 수십개의 의사 결정을 하기도 하니 아주 틀린 숫자가 아니기도 할거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의사 결정을 이토록 짧은 사이에 하다보면 다양한 시각에서, 여러 정보를 취합하면서 의사 결정을 하는게 아니라 '습관적, 관행적, 기존 방식대로, 그저 경험에 기반해서, 그 때 떠오르는 감정대로' 의사 결정을 할 확률이 올라간다. 시간은 쫓기고 자원은 없고 여유도 없을 때 차분하게 고민하기도 어렵고 명료하게 확정짓기도 매우 어렵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우리의 논리적 이성적 판단력 대신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또는 과거 기반, 익숙함 기반의 의사 결정을 한다. 그리고 이게 나중에 문제를 키운다. 


습관이란 복잡한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라 간단하고 반복적인 문제에 한정된 두뇌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에 구축된 시스템이다. 때문에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고 예전과 다른 모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는 불리하다. 다만 경험이 충분하다면 아무리 새로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습관적인 의사 결정도 어느 정도의 효과는 발휘한다.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감정에 기반한 즉흥적인 의사 결정이다. 특별한 논리적 체계도, 전략적 사고도, 시스템에 따른 안정성도 없이 그냥 그날 그날 기분과 감정 상태에 따라 의사 결정이 이뤄지면 원칙도 방향성도 없이 계속 좌충우돌하며 일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이 너무 강력해서 좌충우돌을 통한 한계 확장이 필요한 대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시스템이 아예 없는 스타트업에서 이런 형태의 의사 결정은 기회의 낭비와 자원의 불필요한 소모를 가져오고 무엇보다 임직원들간에 충돌과 감정적 찌꺼기의 축적만 가져오게 된다. 이런 의사 결정으로도 좋은 결과가 우연히 나올 수 있지만 이후 시장 진입과 스케일업 단계까지의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없다. 


경험에 따른 의사 결정이 순발력과 새로운 가능성 탐색의 기회를 막는다면 감정적, 즉흥적 의사 결정은 학습도 축적도 안정성도 남지 않는 결정 방식인 셈이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길게 적는 이유는 창업자가 자기가 어떤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위의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하던 창업자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할 것이고, 자기 방식이 맞다고 여길거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떻게 결정하고 있는지 뒤돌아보지도 않을 것이고. 바쁘고 정신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한 결정의 축적이 사업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는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동물이니 자기가 항상 옳다고 여길 것이고 그 정도 자기 확신이 있어야 창업이라는 위험한 짓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자기가 원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인간이라면 스스로의 가는 길을 가끔은 멈춰볼 필요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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