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지하철 역 앞에서 빨리 먹기 위해 출구 근처 상가 1층에 있는 1칸 정도 크기의 칼국수 집을 들어갔다. 이런 곳은 임대료가 당연히 주변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운영이 가능하려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하나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저렴하되 운영 자체는 매우 간소화되어 있으면서 프로처럼 서비스하는 곳. 일본의 요시노야 같은 식이 된다는 뜻이다. 단순화된 메뉴 구성과 빠른 회전율로 승부한다는 뜻. 매장 구성도 최대한 간략한 인테리어에 최소 인원이 빠르게 서비스를 하는 구조로 만들고 메뉴도 조리나 취식 모두 최대한 빨리 회전할 수 있는 것을 택한다. 칼국수는 취식에 시간이 꽤 들어가는 방식이지만 대학로와 종로 등에 있는 칼국수나 수제비 집 중에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면서도 이런 식의 박리다매가 가능한 형태로 최적화된 곳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들어간 곳은 이런 형태는 전혀 아니었다. 임대료가 비싼 곳에서 규모의 경제가 안되는 작은 매장을 운영할 때 두번째 방식은 고객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그냥 가능한 한 바가지를 씌우거나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렇다고 해도 주변 상인이나 매일 퇴근하는 고객들을 붙잡아야 하는 것은 있으니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렴하고 간단한 기본 메뉴는 하나 두고 나머지는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어차피 뜨내기에게는 많이 받아내면 되는 것이지 다시 올 것도 아니고 입소문을 낼 것도 아니니 별 문제 아니다. 단, 이 경우에는 저렴한 메뉴만큼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올만큼의 가격이나 뭔가 경쟁력 요소가 필요하다.
들깨칼국수 메뉴가 일단 보여서 이걸 시켰는데, 선불이란다. 뭐, 선불이야 지하철 역 앞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런데 가격을 보니 카드 가격이라 현금 가격이 아예 다르다고 명시적으로 표시해놨다. 이거 불법이신데, 아예 대놓고 적어놨다. 뭐, 이것도 작은 동네 가게니 그러려니 하고.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냥 칼국수는 6천원인데 들깨칼국수는 1만원이다. 실제 메뉴가 나온 걸 보고 옆에 그냥 칼국수 시킨 사람과 비교해보니 딱 하나, 국물에 들깨가 들어간 것 뿐인데 4천원 차이다. 게다가 국수 양은 아무리봐도 여학생 정도가 간식으로 먹을 양이다. 이 쯤 되면 이 사장님이 어떤 마인드로 사업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 주방이 어떤 상태일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김치와 들깨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살펴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이 경제 힘들다고 우는 소리 하는 사람 많지만, 경제가 아무리 좋아도 안될 모든 조건을 갖춘 곳까지 장사가 잘될 수는 없는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저렴한 한끼를 위해 오기는 하겠지만 그걸로는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질테니 이 사장님은 오늘 밤에도 장사 안되는 것에 대해 남들 탓을 하고 잠에 들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