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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an 25. 2024

온라인 유통에 오프라인 유통이
밀린거다는 착각

[스타트업을 위한 업의 본질 이야기1] 


[스타트업을 위한 업의 본질 이야기 1] 쿠팡에 밀린 기존 유통사, 이게 온라인 유통에 오프라인 유통사가 밀린 것일까?


코스트코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회사다. 일단 연간 매출액 2,457억불(328조원) 전세계 최고 수준의 유통사 중에 하나인데, 영업이익률은 3.3% 정도 수준으로 주주들에게는 매력도가 높기 어려운 회사로 보인다. 그런데 이 회사 시가총액은 3,046억불 (406조원)으로 삼성전자와 거의 맞먹고, 지난 5년간 시가총액이 1250억불에서 3천억불이 넘는 수준으로 2.5배 이상 성장한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준 회사다. 


잠깐, 지난 5년이면 오프라인 유통사가 거의 박살이 났던 코로나 기간을 포함한 시기인데 주식 가격이 그렇게 오르는게 말이 되나? 게다가 영업이익률이 고작 3% 초반인데?


현대 자본주의의 회사는 주주들에게 수익을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주주에게 환원한다고 하면 먼저 배당을 떠올릴 수 있지만, 배당만이 주주 환원의 방법은 아니다. 무엇보다 배당은 이미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의 주머니로 이전시키는 것이라서 주주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 주주에게 더 좋은 방법은 주식 가격을 계속 높이는 것이다. 비상장이면 몰라도 상장주식의 가격을 높이는 합법적인 방법은 매년 매출과 수익을 늘리고,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해서 유통되는 주식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매력적인 성과를 보여서 주식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과 기관의 수요를 늘리고, 이에 따라 주식 가격이 올라가서 기존 주주가 주식을 팔아 수익을 실현하든 아니면 배당을 기대하면서 계속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식. 


코스트코도 배당을 하기는 하지만 영업 이익률이 낮아서 배당 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주식 가격이 계속 올라가기를 기대하며 구매하는 주식이다. 


그런데, 코스트코는 저렇게 낮은 영업이익률로 어떻게 시장에서 경쟁을 지속하고, 주가는 계속해서 오른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맨날 나오는 뉴스가 '유통사들이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물류망 새로 짓고, 온라인 확장하고, 매장 새롭게 꾸미느라 돈을 너무 많이 써서 기업가치가 낮다'는 것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던가?


더 웃긴 것은 코스트코는 회사가 명시적으로 '우리는 주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히는 회사라는 것이다. 이거 무슨 매력넘쳐서 연애 상대방을 울리는 '차도남'도 아니고, 주주를 가장 중요시하지 않고 영업이익률 3% 수준인데 주가가 5년만에 3배 가량 오르는 성과라니. 


코스트코는 '회원제' 할인 매장이다. 코스트코는 창업 극초기부터 이 회원제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왔다. 코스트코는 '회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고, 회원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경영 목표이자 경영 철학이며, 회원 이익을 위해 주주들의 돈을 가져다 쓰는 것이며, 다만 주주도 수익을 챙겨야 하니 주가를 계속 높여서 더 비싸게 팔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철학을 가진 곳이다. 코스트코에는 14%룰이라고 알려진 내부 가이드가 있었다. 상품을 매입해서 14% 정도의 마진만 붙여서 판매한다는 것이다. 영업이익률 3%의 의미는 이 마진 14%에서 운영비 및 신규 매장 투자비로 11%를 쓰고 남긴 이익이란 뜻이다. (정확히는 14% 마진을 운영비로 다 쓰고, 회원들의 연회비로 받는 돈을 이익으로 남긴다. 회원 연회비가 딱 매출액의 3.3% 수준이다. 사실상 제로마진이라는 뜻) 마진 14%면 너무 낮지 않나 싶을게다. 우리나라 홈쇼핑이나 백화점의 마진율은 40%가 넘는 경우가 허다하고 모 화장품 전문 매장은 한 때 50%가 넘는 마진을 붙였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까. 가격이 낮다고 하는 쿠팡조차도 20% 후반을 넘긴 것이 한참 되었다. 


그런데 300조원대가 넘는 매출을 가진 코스트코가 14%의 마진율만을 갖는다라면 뭔가 이상하게 들린다. 공급사들의 사정을 최대한 봐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게다. 하지만 이 회사 결코 만만한 유통사 아니다. 코스트코 MD들을 상대해보면 느끼겠지만, 해당 물품과 관련해서는 전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유능한, 완전히 '빠꼼이'들이다. 공급사와 납품가 네고할 때 엄청나게 빡빡하다. 그럼 이렇게 빡빡하게 네고해서 고작 14%의 마진만 붙이고 판다는 뜻인가? 이게 코스트코가 경쟁력있는 유통사인 근본적인 이유다. 코스트코는 공급사의 공급가가 매력적이면 여기다 14%만 붙인 후 회원들에게 판매한다. 회원들은 매우 매력적인 가격, 산업내 최저는 아닐지 몰라도 제품의 브랜드 가치나 품질을 생각할 땐 거의 확실한 최저가를 즐길 수 있다. 코스트코는 이를 위해 매입원가를 낮출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소분이 아닌 벌크 구매 & 판매, 대량 발주, 입도선매, PB 등 원가 절감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내부 인테리어나 IT 시스템 등은 원가 절감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경우와 임직원과 고객의 안전을 위해서만 투자하며, 최고경영진의 보상은 미국 대기업 평균보다 월등히 낮게 준다. 원가를 낮춰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운영경비를 쥐어짜서 다시 한번 가격 경쟁력을 강화한다. 그래서 이미 업계 최저가 수준의 매입 원가에 고작 14%수준의 운영 경비로 제로 마진의 제품을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주들에게는 회원들의 연회비를 이익을 돌려주는 회사. 이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매출이 매년 계속 늘어나야 한다. 다행히 지난 40여년간 코스트코는 거의 매년 매출을 계속 늘려오는데 성공했다. 


자, 이 기나긴 오프닝 이야기 말고 이제 글의 제목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해보자. 코스트코라는 회사의 업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되는가? 모든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걸 부정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아니다. 다만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한해 마진을 무한대로 뽑아낸다는 뜻은 아닐 것이고, 장기적인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당장의 주주 이익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회사의 주요 이해관계자의 수익을 제한하거나 심지어 손해를 끼칠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 즉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히려 주주에게 이익을 덜 가져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논리가 바로 업의 본질이고, 경영진의 경영 철학이다. 


회사는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기계이지만, 동시에 이 이익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고객 이익을 극대화하다보면 주주 이익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처럼 생각되는, 즉 제로섬 게임처럼 보이겠지만 코스트코의 경우에서 보듯 매년 매출액을 성장시킴으로써 주가를 계속 높여 주주가 배당을 통한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주주와 손바꿈을 통해 수익을 얻게 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코스트코가 40여년간 실행해온 방식이고, 잡스 시절 애플이 배당을 주지 않았던 논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고객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유통업은 물건을 매입해서 판매하는 과정을 하는 업이고, 이 업의 본질은 고객이 이 유통사에서 '구매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백화점 명품관에서는 내가 명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기에 비싼 돈을 주는 것이고, 코스트코에서는 좋은 품질과 유명한 브랜드 제품을 놀랄만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가는 것이며, 쿠팡은 가격이 싸면서 클릭 몇 번이면 집까지 물건이 오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이 과정은 욕구의 기본적인 충족의 과정이며 즐거움을 얻는 과정이다. 물론 다이소에서 제품 품질에 의문이 드는 제품처럼 보였는데 막상 써보니 혜자였다는 제품을 찾는 즐거움도, 돈키호테에서 진짜 돈키호테처럼 헤매다가 엉뚱한 물건을 찾는 즐거움도 구매하는 즐거움의 범주에 들어간다. 유통업에서 고객 이익 극대화는 고객에게 구매하는 즐거움을 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주주를 포함한 회사내 모든 이해관계자의 단기 이익을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주주일수도 있고, 납품사일수도 있으며 직원일수도 있다. (잘 안믿어지겠지만 코스트코 창업자 중 한명인 제임스 시네갈은 미국내에서 유명한 '최저임금 옹호론자'였다. 뉴스에 나와서 '최저임금 반대론자'로 유명한 월마트 CEO와 논쟁을 벌인 적도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 유통사, 특히 오프라인 유통사가 고객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말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단기 이익을 희생하라고 요구하고 실제 희생한 적이 있나? 


쿠팡이 공급사에게 개미지옥이고 물류 현장의 열악한 관리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 부분은 정말 쿠팡이 반성해야 하지만 어쨌든 주주들은 10여년이 넘는 엄청난 적자를 버텨내야 했다. 규모가 하도 엄청나서 주주 돈을 강탈해서 고객들에게 넘겨주는 시스템이라고까지 이야기되었던 곳이니까. 


매출 3조원을 바라보는 국민 놀이터가 된 다이소의 경우에도 창업자의 고생 스토리는 2010년대까지 계속된다. 이런 곳에서 임원들이 비즈니스 좌석 타고, 5성 호텔에 머물며 양주마시는 식으로 운영하면 운영이 잘 되었을리가 없고, 그걸 참고 고객의 이익으로 넘김으로써 회사의 성장과 임직원에게 더 많은 기회로 돌아온 것이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정말 고객 이익 극대화를 통해 주주와 이해관계자의 장기적 이익을 극대화하겠다고 경영을 해왔을까? 이들이 정의한 업의 본질이 만약 이것이었다면 코스트코나 쿠팡, 다이소가 잘나가는 동안 이들도 잘나갔어야 하지 않나? 이게 단지 온라인에 오프라인이 밀린 것이라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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