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B2B 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하나만 더 좀 추상적이지만 필요한 사안을 살펴보자. 바로 영업과 마케팅의 차이다.
“The science and art of exploring, creating, and delivering value to satisfy the needs of a target market at a profit. Marketing identifies unfulfilled needs and desires. It defines, measures and quantifies the size of the identified market and the profit potential.”
마케팅 구루로 유명한 코틀러 교수가 쓴 표현인데, 마케팅은 타겟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가치를 찾고, 만들고, 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수익을 만들면서.
그런데 기업의 활동을 살펴보면 결국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치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을 제품에 녹여내고,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며 돈을 버는 일이다. 어라? 이렇게 되면 코틀러 교수의 마케팅 정의는 ‘마케팅 = 기업 활동 전체’인데?
맞다. 마케팅은 기업의 활동 전체를 의미하고 그 과정을 통해 기업이 수익을 올리고 성장하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 코틀러 교수의 시각에서 기업 경영 그 자체가 마케팅이다.
일본 경영의 신 중 하나로 추앙받는 이나모리 회장에 따르면 회사의 모든 임직원은 직무를 막론하고 영업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질 때 매출이 늘어난다고 한다. 단순 영업 직무뿐 아니라 회사의 생산이나 연구개발, 사무직까지 영업에 나서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 기업이 경쟁력을 가진다고 본 것이다. 어라? 이렇게 하면 영업이 기업 활동 전체인데?
이쯤되면 둘 중 뭐가 맞는거냐 아니면 둘 다 맞는거냐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과 영업’을 그냥 필요에 따라 기업의 업무를 부분 부분 나눈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가 기업의 근본부터 있던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설명하면 기업이 ‘핵심 고객을 찾고, 그 니즈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제품을 만들고, 이를 가장 적절하게 고객에게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수익을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팔고 수금하는 것이 영업이고 광고 때리는 것이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니 생기는 인식의 오류라는 뜻이다.
기업의 본질은 바뀐 적이 없다. 니즈에 맞춰 물건 만들고 팔고 수익 남기는 일이다. 그 중에서 고객을 만나 설득하고 물품의 공급과 소비를 관리하고 그 과정에서 수금을 하는 것에 ‘영업’이라는 네이밍을 한 것이고, 시장 전체의 니즈를 읽고, 이들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기획하고, 폭넓은 고객에게 이를 알리고 수익구조를 설계하는 일에 대해 ‘마케팅’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B2C의 경우 보통 한 고객이 기업 전체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즉, 소수 고객만으로는 매출도 수익도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고객을 찾아야 하고, 이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반영해야 하며, 이들이 우리 제품에 대해 인지하고 편리하게 구매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흔히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업무가 중요성을 높게 가지게 되는 것.
반면 B2B의 경우 보통 개별 고객사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개별 고객의 특별한 니즈나 요구 사항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하고, 시장 전체의 인지도 향상만큼이나 개별 고객의 만족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별 고객과 많은 시간을 보낼 인력이 필요하고, 이들이 결제하는 금액도 크기 때문에 매출채권의 관리나 재고 관리 같은 것의 중요성이 훨씬 커지게 된다. 그래서 ‘영업이라고 이름붙인 부서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것 뿐이다.
하지마 B2C라고 해도 외부 판매 대리점이나 대형 유통사를 통한 납품이 중심을 이루는 경우 개별 고객들에게는 우리 제품을 알려나가야 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대리점과 유통사를 관리하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업무가 동시에 중요하고, B2B라고 해도 SaaS처럼 개별 고객사의 매출 비중이 낮은 반면 수많은 고객사가 필요한 경우엔 고객사들의 인지도와 제품에 대한 관심이 중요해져서 이들에게 우리를 알리는 업무가 중요해진다.
아주 큰 대기업이라면 이런 업무들을 담당하는 부서들이 여럿 존재하게 되지만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의 경우라면 이런 업무들이 분화되기 전 상태로 뒤섞이게 된다. 마케팅이 어떻고 영업이 어떻고 따질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에서는 고객의 니즈 발굴부터 인지도 확보, 고객 설득, 제품의 개발과 전달, 결제와 수금까지가 모두 소수의 인원이 하게 된다. 마케팅이 영업이고 영업이 마케팅이며 기업 활동 전체가 된다.
고객의 니즈를 발굴하고, 인지도를 확보하고 제품을 잘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마케팅이 뭐고 영업이 뭔지 구분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각 업무를 잘 수행해내면 되는 일이다. 영업과 마케팅이 뭐냐가 아니라, 그래서 우리 회사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일들이 뭐고,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실행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