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신성장동력 발굴 1. 준비의 시기와 기업가 정신
1. 기업은 기본적으로 외발 자전거다. 움직이지 않으면 옆으로 넘어지게 된다. 경쟁 상황의 악화나 고객의 변심 때문도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내부에 고정비의 레버리지 효과 때문에 매출이 조금만 빠져도 영업이익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고, 줄어든 이익은 투자금 부족, 인재의 이탈, 거래처와의 거래 조건 악화, 브랜드 명성 하락 등 연쇄적으로 부정적인 여파를 만들어내서 사업을 급격히 추락시킬 수 있다. 일정 크기 이상의 기업은 무조건 매출이 매년 성장해야 한다.
2. 주력 산업이 고속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또는 주력 산업에서 대규모 교체 수요가 존재한다면 이 부분에만 집중해도 기업은 성장을 확보할 수 있다. 예전의 스마트폰이나 배달앱이 성장하던 시기처럼 매년 수십 퍼센트씩 성장하면 이 성장을 유지하고, 고객에게 약속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일이다. 성장기 청소년에게 아무리 고기를 먹여도 금방 배고파하는 것이 기업의 주력 산업에서도 일어나는 것. 이런 상태라면 신사업은 거의 꿈도 못꾸고, 꿀 필요도 없다. 그저 주력 사업에서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하면 충분하다. 2007년 이후 애플이 신사업을 시도한 것은 8년 정도가 지난 에어팟 정도다. (애플 스토어를 신사업으로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텐데, 애플스토어는 원래 2001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되었다. 본격화한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지만) 아이폰이 팔릴만큼 팔린 다음에 신사업을 한 것이다.
3. 그런데 애플의 매출액 성장 추이와 외부 기술 업체에 대한 M&A, 그리고 애플의 신사업 출시 시기를 비교해놓고 보다보면 재미있는, 앞서 이야기와 약간 다른 점이 보인다. 애플은 2004년 80억불의 매출을 올린 다음부터 4년 간격으로 매출이 3배씩 뛰어 오르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팟의 성공과 맥의 복귀,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폰의 성공이 연결되어 이룬 성과다. 12년만에 27배 성장한 셈이니까. 잡스의 유명한 아이폰 태스크포스를 준비한 시점이 2000년대 중반 정도로 알려져 있으니 아이팟이 성공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뒤에 아이폰이 본격 성장을 하게 되자 애플은 2008년 이후 M&A하는 횟수를 본격적으로 늘리는데, 거의 대부분 아이폰 및 아이튠스, 지도 등 아이폰 관련 서비스의 강화를 위해 관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인수한 일들이었다. 그러다 2010년대 초가 되면 슬슬 그 뒤에 나오게 되는 에어팟을 위한 인수가 하나씩 둘씩 보이기 시작하고, 2016년 에어팟이 나온다. (아이폰이나 에어팟을 신사업이 아니라 그냥 신제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나의 시선에서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제품별로 다르고, 구매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업이라는 생각이다. 아이패드는 그냥 아이폰의 확대 버전 정도가 맞지만)
4. 하나의 사례만 이야기하면서 이게 진리다라고 말할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실제로 성장을 장기간에 걸쳐 지속하는 기업들의 매출 성장, 기술 개발, 인수 등 신기술 확보, 그리고 신사업 진출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면 안정적인 매출 성장 곡선을 보여주는 기업일수록 매출이 잘나갈 때 신사업을 준비하고, 아무리 짧아도 몇 년 이상의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애플이 이번에 내놓은 비전 프로의 경우 관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인수한 시점이 2016년 정도부터 보인다. 애플 같은 기업에게도 MR 글래스는 그만큼 오래 준비해야 하는 도전 과제였다는 뜻일게다. 물론 최초 제품 판매는 지지부진이지만 2년차 제품, 3년차 제품에서 얼마나 개선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1천만대만 판매할 수 있다면 에어팟이나 아이패드/맥북 사업 같은 걸 하나 추가하는 일이 된다.)
5. 당연히 돈 잘벌 때 신사업 준비하는게 맞지 않나 싶겠지만, 회사에서 신사업을 준비해보면 알게 되는 것은 주력 사업의 매출이 늘어날 땐 기업의 신사업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상태라는 점이다. 신사업을 할 돈이나 환경을 갖춰져 있지만 기업 내부에서 누구도 아주 커다란 열정을 가지고 신사업을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최고위 경영자들에게 신사업을 아무리 보고해도 이미 기존 사업 성장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라면 신사업은 괜히 머리만 아프고 그렇찮아도 부족한 경영 자원을 가능성이 낮은 일에 분산시키자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지, 분산하면 안돼’라는 말만 듣기 쉽다. (당연히 기존 사업이 잘 나갈 때 신사업 진출 이야기는 주주들도 싫어한다. 이미 충분히 잘벌고 있는데 왜 쓸데없는데 돈을 쓰겠다고 할까? 경영진이 성공에 취해 자만감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회사 내외의 주요 이해관계자가 모두 시큰둥한데 신사업을 쉽게 시작할 수 있을까?)
6. 결국 잘 벌 때 위험도가 높은 신사업에 투자하는게 당연하다 싶지만 그렇게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잘 벌기 때문에 기업 내부에서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배부른 사자는 맹수가 아니라 그냥 덩치큰 고양이가 되는 셈이다.
7. 기업 내부에서 기업가정신을 새롭게 부스팅하는 방법은 잡스가 아이폰 TF를 직접 이끌었던 것처럼 결국 최고 경영자가 이 문제에 대해 자기 발등의 불처럼 경각심을 갖는 것 뿐이다. 만약 최고 경영자가 도저히 이렇게 직접 챙길 수 없다면 기업 내에서 이를 이끌 사람을 선정하되, 정말 진심으로 그 사업을 성공시키기를 바라는 노력을 다 해야 한다. 이 신사업 팀이 기업 내외부의 외풍에 시달리지 않게 지켜주고, 성공을 위해 인력을 포함한 지원을 최대한 해주고, 리스크 높은 결정을 지지해주고, 그 성과에 대해 이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에게 기존의 방식보다 월등한 보상을 해주는. 유명한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사례가 이런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8. 물론 이렇게 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보장이 되면 사업이 아니다. 하지만 배부른 상태로 낮잠을 자면서 성공을 꿈꿀 수는 없는 법이다. 사냥물을 잡아 놨어도 새로운 사냥감이 보이면 며칠을 굶은 것처럼 덤벼들어야 거대한 물소를 쓰러뜨릴 수 있다.
9. 자금이 가용할 때 돈 더 가져가거나 어설프게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이나 할 것이 아니라, 굶주린 사자의 눈빛을 스스로 가지든 아니면 직원 중에서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서 기회를 주는 것이 기업의 신성장 동력 발굴의 첫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