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한 직장인의 의미에 대한 단상
※ 앞서 제가 쓴 글중에 직업과 자아실현을 분리하고, 일을 할 땐 프로처럼 하자는 글이 브런치 카톡에 노출되는 바람에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제 글에 대한 호응 만큼이나 오해도 많이 하신 것 같아 일일이 댓글을 달지 않고 약간의 추가 설명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해당 글 https://brunch.co.kr/@curahee/38)
직장 혹은 직업에 대한 가장 흔한 시선은 자아실현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실제 직업인으로 살면서 나의 노력만큼 성과가 나오고, 배우고 알게되는 것들이 늘어나고, 주변에서 인정도 받고, 그에 따라 새로운 기회들이 다시 주어지는 삶은 분명 자아실현 그 자체는 아닐지는 몰라도 만족스러운 커리어죠.
다만 이렇게 살기가 참 만만치 않습니다.
커리어의 성공이 개인의 노력에만 달려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직업 혹은 직장이 이런 노력을 쏟으면 성과나 만족이 나올 것인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죠. 눈 딱 감고 한 3년은 매달려봐야 그럴 가치가 있는 직업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이야기도 하지만, 보통 이 기간이 하필 생각 많고 꿈도 많지만 자기의 성취에 불만도 많고 인내심은 적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이라는게 문제가 됩니다. 매달리고, 탐색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을 찾으려는 노력은 멋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패하게 되면, 즉 결국 자기를 동기부여 해주는 직업을 못찾거나 찾았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는 기간이 너무 길면 대안이 별로 없죠. 멘탈이 튼튼한 분들이나 목표의식이 아주 분명한 분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버텨내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직업 선택과 업무 수행을 자아실현과 연결하지 않는게 좋다고 말한 건 이런 분들에게 대안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보편성이 높은 또 다른 시각은 직업은 그냥 돈벌이라는 겁니다. 얼핏 보면 제가 이야기한 것과 똑같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이건 사실 직업이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는 말보다도 제가 이야기한 요지와 거리가 멀 것 같습니다. 세상일이란게 “일은 그냥 돈벌이 아니냐, 그러니 대충 시간 떼우고 돈 받으면 된다”라는 태도로 일하다간 30살도 되기 전에 이 직장 3개월, 저 직장 3개월하는 삶을 살게됩니다. 성취동기도 약하고, 삶의 목표도 별로 없으면서 그냥 헛바람든 사람일 가능성이 높죠. 아니면 정규직 될 때까지만 노력하고 그 뒤엔 월급루팡하는 삶이죠. 뭐, 그 사이 태도를 바꾸시면 몰라도 이런 분들이 삶에서 자기 스스로 만족스러운 성취는 없을테고,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겐 분노의 대상이 되기 십상일 겁니다. 성격적으로 삶의 성취동기가 약하고, 대신 자기 잇속엔 아주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게 될겁니다. 보기도 싫지만 주변에 민폐인 삶이죠. 저도 당연히 이런 삶의 행태를 싫어합니다.
세번째 태도는 기왕 하는 일 성실하게 하자 라는 시각을 가진 겁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다보면 얻는게 있고, 근면하게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만족도가 올라가고, 큰 성공은 아닐지 몰라도 감사해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시각입니다. 좋은 시각입니다. 우리의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삶이기도 하고, 소박하지만 건강한 삶이죠. 그렇지만 이 역시 현실감각과 성실성이 높은 성격을 가진 분들에게 가능한 삶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삶에 대해 책임감과 성실성이 높지만 욕심은 과다하지 않은 성격을 가진 분들은 전체 인구의 30% 미만인 것 같습니다. 이 시각은 건강하지만, 이 역시 모두에게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시각입니다. 현실에 집중하는 능력을 개인이 노력하면 무조건 갖게 된다고 믿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건 노력을 통해 얻는 역량이 아니라 타고난 성격에 가깝습니다. 이게 안되는 사람에게 이런 걸 요구해도 잘 안됩니다. 마치 성질 급한 사람에게 천천히 하라고 하거나 불안이 높은 사람에게 맘 편히 해라라는 말처럼 맞는 말이지만 공허한 말입니다. 이걸 강요하면 개인의 감정에 대한 억압이 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 자본주의적 시각의 프로페셔널한 직업관이 있습니다. 직업은 사명도, 자아실현도, 성실해야하기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허술하게 처리해서는 절대 안되는 그 무엇이라고 보는 겁니다. 직업에서 자기의 감정을 분리하고, 철저하게 계약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동시에 남보다 잘해야 합니다. 왜냐면 프로처럼 일한다의 의미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남보다 더 잘해내지 못하면 다음 계약은 없어진다는 뜻이고, 내 몸값이 더 올라갈 기회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팀플레이어어야 합니다. 현대의 대부분의 업무는 결국 집단, 특히 기업을 위해 하는 일이고, 나 개인이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집단의 성과가 안나오면 내 노력이 묻혀버리게 십상이니까요.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는 철저하게 개인 계약 기반이지만, 이들은 정말 죽도록 노력하고 경쟁하고 자기의 실적이 조금이라도 남보다 우월하려고 노력합니다. 동시에 팀에 공헌하지 않는 선수는 성적이 높고 몸값이 올라가도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기는 어렵죠.
창업자라면 몰라도 월급쟁이에겐 과다한 요구라고 생각하실겁니다.
실제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90년대 후반 국내에서는 기껏해야 외국계 초대형 회사들과 소수의 엘리트가 모여있는 전략컨설팅 회사, 투자은행 정도에서 통용되던 직업관이었죠. 국내 전체를 통틀어 1만명도 안되는 극소수에게만 요구되던 시각입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잘나가는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대부분이 팀장 이상의 인력을 승진시킬 때 사용하는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글로벌에 도전하는 규모를 가진 대기업에서는 사원부터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분위기라며 좋아하는 넷플릭스 같은 회사들은 아예 이 문화가 기업문화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는 회사죠. 프로들이 모였으니 자유롭고, 서로 존중합니다. 성과급 등 보상도 확실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살벌한, 예의는 지키지만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냉정하게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의 아이디어와 업무 성과에 대해 팩트폭행하고, 이를 못견디거나 성과를 못만드는 20~30%는 매년 회사를 떠나는 문화입니다. 지금의 기술발전과 4차산업혁명의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면, 이런 프로 직장인의 트렌드는 날이 갈수록 대세가 되어갈겁니다. 조금 넓게 보면 Gig Economy 라는 키워드 역시 이런 프로 직장인의 시각이 기반입니다.
이렇게 프로페셔널 직장인이 되려면 다음의 몇 가지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1. 일을 잘할 것, 남보다 잘하고, 절대 기준에서도 완벽할 것. 열심히 했다고, 정말 죽도록 했다는 핑계없이 그냥 완벽한 결과를 내놓을 것. 여러분이 돈주고 업체에서 서비스받을 때 품질 나쁜데 핑계댄다고 이해 안되지 않나요? 그것과 똑같은 걸 회사에 주는 것임.
2. 감정 투입, 즉, 이 일을 잘하면 상사가 나를 케어해줄 것이다 혹은 이 일을 잘하면 이 회사가 나를 인정해줘서 내가 소속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같은 개인의 감정을 배제한 , 철저한 계약 기반으로 일할 때도 소속감이나 충성심을 가진 인력보다 일을 더 잘할 것
3. 계약의 상대인 회사가 뒤통수를 때릴 경우 쿨하게 헤어지고 더 좋은 계약 상대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의 평판을 쌓을 것
4. 팀플레이어로서 조직 전체의 성과와 내 업무의 결과를 엮어내거나, 내 담당 업무가 조직의 성과가 되도록 조직을 리딩할 능력을 갖출 것.
미션 임파서블 같나요?
직업과 심리적 거리를 둔다는 건, 자아실현을 위해 열심히 한다는 것이나 일은 성실하게 해야한다는 당위적인 주장보다 사실 훨씬 기준이 높은 겁니다.
그리고 이 살벌하고 숨막히는 기준이 날이 갈수록 우리사회의 표준이 되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