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성규 Nov 02. 2018

2. 아빠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2

어린 시절,

유치원과 초등학교 1년 정도를 상하이에서 보냈던 큰 아들은 중국어에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년 가까이 쓰지 않았던 외국어는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도 쉽지가 않았다. 하물며, 중국에서 학교를 다녀보지 않았던 작은 아들의 중국어는 말 할 것도 없었다.

큰 아들 벼리를 데리고 상하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아는 중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대충 알아듣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저 웃기만 할 뿐 말을 하지는 못했다.

상하이로 온 아이들은 1년 동안 학교를 비롯한 어떠한 교육기관도 가지 않고 그저 1년 내내 방학 같은 생활을 하며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1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나중에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본다면 나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방치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은 생각지도 못했던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어쨌든 그때는 밤에 몇 시에 잠을 자든 낮에 무슨 일을 하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집 근처의 수제 맥주 집에서 휴대 전화로 인터넷을 하며 즐거워 하는 벼리와 누리.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거나 자전거를 탔고, 아니면 음악을 듣기도 하고, 산책을 가기도 했다.

몇 개월 임시로 잠시 들어가 있던 거주지에는 인터넷도 되지 않아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근처 카페를 가야 했다. 그런 임시 거주 상태였기에 TV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존재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큰 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항상 놀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충분하게 놀 시간이 주어지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모든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니 뭘 해야 되는지 판단이 안 서요. 24시간이라는 하루가 이렇게 길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요. 팍팍하다고만 생각했던 학교 생활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사실 아이들은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스스로의 계획대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태어나서 유치원을 가기 전 까지는 부모가 만들어준 하루의 일정에 따라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유치원을 가면서 자신의 시간은 유치원이 결정해주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아이들은 학교라는 기관이 만들어준 계획에 자신을 욱여넣어 살아왔다. 생활계획표를 스스로 만들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짜인 시간 내에서 여유를 만들어 짜내는 계획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그 짜인 시간 속에 순응하며 어느 순간 스스로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주어진 아이들 자신만의 온전한 하루라는 시간은 적지않은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이로 와서 생전 해 보지 않았던 자유로운 시간의 바다속에서, 엄마나 선생님이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고 질책하고 나무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은 자기가 나태해지고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느낀 것이다.


고졸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한국을 들어가며 반나절 정도 경유한 홍콩에서의 벼리.


“아빠, 어디라도 좋으니 학교에 보내 주면 안 되나요?”


또래 친구도 없었고, 피시방도 없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무인도와도 같은 시간을 보내며 1년 동안 할 일 없이 놀던 두 아이가 한숨을 쉬며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나마 큰 아들은 1년 동안 간간히 책을 보며 고졸 검정고시라도 본 후였지만 작은 아들은 하루 몇 시간씩 중국어 발음 공부와 글자 공부만 할 뿐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어딘가 소속감을 느끼며 짜인 계획 속에 들어갈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큰 아들 벼리를 위해 집에서 가까운 대학의 중국어 언어반을 알아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문 대학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자전거를 타면 5분 안에, 걸어서 가도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학교를 알아보았다는 말이다. 내 대학 동기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학교와 헬스클럽은 집에서 가까워야 한다.'라는 것이었는데, 나도 그 말에는 상당히 동의를 하던 터였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교통대학이라는 곳이 있었다. 대학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아담했지만, 고색 찬연한 학교 교문과 한 학기에 한국 돈으로 150만원 정도의 학비가 6개월간 해외에서 언어 연수를 하는 비용으로 그리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한바퀴 돌며 아담하고 포근한 학교 교정을 거닌뒤에 바로 이 학교로 결정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집에서 가장 가깝다고 선택했던 이 학교가 세계 랭킹 50위 내에 들어가는 명문대학이며 함께 산책삼아 거닐 정도로 아담하고 자그마한 교정은 본교가 아닌 상하이 도심 한가운데 있는 분교였다. 외곽에 있던 본교는 버스를 타고 다닐 정도의 넓이로 상상을 뛰어 넘은 엄청난 규모의 대학이었다.

큰 아들은 그곳에서 언어 연수를 시작했고, 작은 아들은 동네 로컬 초등학교를 알아본 뒤 그곳으로 보내게 되었다.


중국어 언어를 배우는 교통대학 정문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나눠준 옷을 입고 흐뭇한 표정을 하는 벼리.
집에서 코 앞인 학교인데도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그리고 중국 초등학교 교실에서 무슨 말인지 몰라 헤메는 누리.


매거진의 이전글 1. 돈이 없어 한국을 떠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