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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제작소 Feb 01. 2021

새로운 세상을 향한 구두끈을 묶으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동쪽에서는 소련군이 폴란드를 지나 독일로 진격하고 있었으며, 남쪽과 서쪽으로 연합군의 독일 입성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패망 직전의 독일. 패망 직전의 독일을 살아가고 있는 10살 짜리 소년의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졌을까. 


1945년 독일에서 살고 있는 소년의 세상은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자신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가 말을 배우고 조금씩 더듬으며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오직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그 길을 벗어난 모든 것들은 악이었으며, 그 길 위에서 꿈을 키우고 희망을 찾는 ‘영광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 영광의 길 위에 그의 절친이자 우상인 히틀러(상상속의)가 함께 한다. 


변화의 과정은 예측 가능하고, 소년의 각성과 성장은 기대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비록 성긴 구성을 따라 예상했던 결과에 도달하고 있지만 감독의 시선이 과하지 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 길 위에서 갈등과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전달되는 전시상황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패전 직전의 모습들은 밝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소년의 세상은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 시대 모습 속에서 한가로이 날고 있는 파란 나비의 모습처럼 보인다. 


어둡고 암울한 상황이 밝고 유쾌하게 그려지고, 공포와 불안이 유머로 치환된다. 이미 알고 있는 모든 상황들을 오직 10살짜리 소년만이 동화 속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시즘 속에서 태어나 전 생애를 파시즘 속에서 성장한 10살 짜리 소년에게 파시즘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며 그 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영화는 파고든다. 

감독의 의도는 10살 소년이 세상에 대해서 가졌을 심각함의 정도만큼 머문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때의 상황에 단순하고 엉뚱한 시선으로 우리를 이끈다.


엄마 로지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는 소년의 구두끈을 묶어주는 장면이 반복된다. 10살 짜리 소년이 당연히 가져야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전수할 수 없는 시대를 그리고 있는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사소하게 다가와 묵직하게 남는다. 


구두끈을 묶는다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며 당연히 익혀야할 가장 기초적인 지식의 상징에서 출발해 삶과 죽음의 상황을 가르는 기준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의 출발점에서 다시 등장한다. 살아가는 동안, 다시 시작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구두끈을 묶는 장면이 반복된다. 


갈등 없는 세상 속에서 오직 전달된 명령(혹은 임무)을 이행할 수 있는 ‘용기’의 함량만이 존재하는 소년의 동화같은 세상에 균열이 일어난다. 우연히 집에 몰래 숨어 있던 유대인 소녀 엘사를 발견하게 되면서 소년을 지탱해오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머리에 뿔이난 유대인 괴물의 대면에서 시시각각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독일의 상황 속에서, 상상 속 히틀러와 나누던 대화들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과정들이 이어지면서 균열된 세계관에 비로소 객관적인 시선이 자리를 잡는다. 이제 소년 앞에는 오직 한 길만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또 다른 길을 갈 것인가로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 <조조 래빗>은 시대에 의해 만들어졌던 선입견을 깨는 과정의 영화다. 파시즘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소년의 선입견이 깨어지는 과정을 엉뚱하고 재기발랄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숱하게 영화화 되었던 홀로코스트에 관한 틀에서 벗어나 또 다른 방향의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연합군과 유대인의 시선에서 독일 아이의 시선을 택한 것이 그것이다. 전쟁과 학살의 주제를 무겁고 우울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했던 이전의 영화와 다르게 밝고 앙증맞으며, 웃음으로 비극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의 세상에서 ‘용기’의 함량만이 문제가 되었던 인생에서 의문과 갈등이 자리잡는다. 괴물이며 악마였던 유대인 소녀와의 만남에서 절대적 인물이며 절대적 선의 경지에 있던 나치가 서서히 위치를 바꿔가기 시작한다. 

변화의 과정은 예측 가능하고, 소년의 각성과 성장은 기대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비록 성긴 구성을 따라 예상했던 결과에 도달하고 있지만 감독의 시선이 과하지 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웃음을 유발하거나 비극의 극적인 상황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적절한 시점에서 멈춘다. 


감독의 의도는 10살 소년이 세상에 대해서 가졌을 심각함의 정도만큼 머문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때의 상황에 단순하고 엉뚱한 시선으로 우리를 이끈다. 


조조는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드디어 세상으로 나온 유대인 소녀의 구두끈을 묶어준다. 깨어진 세계관에 또 다른 선택지가 놓인 길로 들어갔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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